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협조를 약속한 지 석 달여만에 침묵을 깨고 사법부 개혁방안으로 법원행정처 폐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후속조치를 약속했음에도 사실상 자체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법원 안팎의 비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취임 1년을 맞는 김 대법원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법개혁은 원점부터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국민의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 대신 ‘(가칭)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 권한을 주고, 집행업무만 맡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해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과 법원사무처의 공간을 분리하고,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을 두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번 사태가 법원의 관료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행정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인식 하에 사법부 구조를 개편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수직적·위계적인 법원 조직을 수평적이고 투명하게 바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확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또 파견법관 최소화, 법관 의견을 반영한 법원장 임명 등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권한을 내려놓는 인사제도 개선안도 함께 내놓았다.
이는 지난 5월말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발표 후 김 대법원장이 제시한 안의 연장선상이자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당시 그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분리하고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안을 검토하겠다며 사법행정권 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재판 거래’ 의혹 등 논란이 거세지면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김 대법원장은 법원 내외부 의견을 수렴한 후 보름여만에 수사 협조 입장을 냈다. 사법개혁 추진 뜻도 재차 강조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숙고해왔다. 재판거래 의혹이 확산되고 영장을 둘러싼 법원·검찰간 갈등이 불거졌지만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침묵을 지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이렇다 할 사법개혁 추진도 보이진 않았다. 다만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가 지난 7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 기구로 ‘(가칭)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 이번 결정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0일 회의에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체와 집행기구, 대법원 운영 사무국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안을 의결했다. 최기상 법관대표회의 의장 등 6명은 12일 김 대법원장을 면담해 이 같은 뜻을 직접 전달했다.
이 같은 방안은 향후 대법원장 직속의 실무추진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에서 올해 내 추진될 전망이다. 외부 법률전문가와 법관 등 7명으로 꾸린 뒤 오는 10월말까지 방안을 구체화하고 법원 내외부 의견을 수렴해 법률 개정안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법부 개혁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 대법원장은 “법률안은 사법발전위 논의 등을 거쳐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입법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히면서,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보다 큰’ 기구의 구성 방안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