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박지리 지음/164쪽·1만1000원·사계절
이 소설의 주인공은 1년 전 발생한 고교 총기난사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죽은 18명의 학생을 추모하는 참사 1주기 추도식 다음 날, 그는 숙제를 하지 않거나 이유 없이 조퇴를 해도 특별대우를 할 뿐인 학교를 벗어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작품은 2010년 ‘합체’로 등단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 독특한 작품들을 남기고 2년 전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마지막 유작이다. 고등학생들의 죽음과 남겨진 소년의 이야기란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출판사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을 참사 발생 이전에 집필했다.
한편, 어린 학생들의 죽음과는 달리 학교 옆 공사장 인부의 죽음은 아주 쉽게 잊혀진다. 주인공이 하루 동안 만난 낯선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과연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든 이의 목숨은 소중한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 ‘번외’는 1년 전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소년이 학교 밖을 나가 하루 동안 배회하는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이어진다. 사계절 제공
나아가 이 책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동물원에 간 주인공은 사람들이 고귀하게 여겨 마지않는 인간의 삶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삶을 비교해 본다. 허무한 죽음들 앞에서 삶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 종국엔 교우 18명을 살해한 K는 ‘용서받을 수 없다’면서도, 어쩐지 그의 편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일찍이 살고자 하는 것엔 미련이 없었던 K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무료 급식시설을 운영하는 베드로 신부는 주인공이 만난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삶과 죽음에 초연하다. 베드로 신부는 급식소에 오는 부랑자들 일부가 자신을 대상으로 살인 모의를 하는 것을 알지만, 그 자체도 삶이 지닌 모순임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짧은 분량 안에 죽음을 마주하는 사회의 시선, 평등 논리와 이중 잣대,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욕망 등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녹여 냈다는 사실이 거듭 놀랍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