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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밀수 단속 중국 단둥…살기 위한 北주민 몸부림 ‘처절’

입력 | 2018-09-23 09:04:00

● 대대적 단속에 압록강 상류로 밀수 루트 이동… 치열한 추격전
● 바닥 넓적한 선박 활용해 수심 낮은 상류서 밀수
● 中국경경비대 “밀수하다 걸리면 죽인다”
● 美 압박받은 中, “연말까지 단둥 불법체류 북한인 전원 추방”




북·중 접경 압록강 부두. [동아DB]

“중국이 북한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비난 발언에 중국 정부는 공개적으로는 이를 부인하면서도 속으로는 매우 긴장하며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미국을 의식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9월 평양 방문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또 북·중 교류의 상징인 단둥 일대에서는 ‘불법체류 북한 노동자 추방’과 ‘밀수 단속’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단속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트럼프 잇단 中 비난…“시진핑 방북 무산”트럼프 대통령은 8월 ‘북한 후견국’ 중국을 겨냥하는 비난 발언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8월 16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우리와 북한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만, 중국 때문에 아마 (북·미 관계가) 다소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미국의 무역 관련 조치를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8월 20일 로이터와 한 인터뷰에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과거만큼 북한 문제를 돕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8월 24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일정을 전격 취소한 후 “중국이 무역 문제 때문에 북한 비핵화 과정을 전처럼 돕는다고 믿기 어렵다”고 거듭 불만을 나타냈다. 또한 8월 29일에는 백악관 성명을 통해 “중국이 북한에 자금, 연료, 비료, 공산품 등 상당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8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월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무책임한 논리는 역시 최고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의식한 행보가 이어진다. 당장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맞춰 계획된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이 무산됐다. 9·9절 축하 사절단으로 중국은 권력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일행을 보냈다. 



중국은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일대에서 대북 압박 강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중국 당국이 단둥 일대에서 펼치는 대북 단속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6월 말 단둥 당국은 “지난해 8월부터 입국한 불법체류 북한 인력을 7월 말까지 귀국시켜라. 안 그러면 1인당 5000위안(약 84만 원)의 벌금을 물린 뒤 강제 추방한다”고 경고했다. 또 7월 27일부터는 단둥과 압록강 일대에서 북한산 물품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업자들이 난리가 나자 당국은 뒷돈을 찔러주는 업체의 인력은 눈감아줬고, 북한산 물품 반입 금지에 대해서는 “20일만 참으라”며 업체들을 달랬다. 하지만 이후 당국의 단속은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 8월 초순 단둥 당국은 불법체류자 전원을 내년 1월 7일까지 내보내라고 추방 범위를 더욱 확대한 데 이어 “8월 9일부터 단둥과 압록강 일대 모든 밀수를 전면 단속한다”고 경고했다. 8월 9일 특명 이후 10일간 당국은 밀수업자 37명을 검거했다. 또 밀수 물량이 20만 위안 이상이면 현장에서 구속하고, 그 이하면 구류와 벌금형에 처했다.



눈에 불을 켠 中국경경비대갈수록 강해지는 단속에 북한에서 만든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 중국으로 빼내려는 양태도 다양해진다. 9월 초 현재 단둥과 압록강 일대에서 국경경비대 단속이 살벌하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현장에서 국경경비대 군인들은 총을 든 채 “밀수하다 걸리면 죽인다”고 외치며 눈에 불을 켜고 선박 바닥까지 뒤졌다. 그동안 밀수 선박의 활동은 주로 압록강 하류와 공해에서 이뤄졌다.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은 하류와 바다는 대형 선박이 접근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수 단속도 주로 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단속이 계속되자 밀수 루트가 강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북한 쪽에서 보면 신의주에서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서로 뇌물을 주며 밀수 물건을 강 상류 쪽으로 분주하게 옮겼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신난 이들이 있다. 압록강 상류 쪽에서 농사를 짓는 중국 농민이다. 밀수업자들이 물건을 북한에서 중국으로 옮기면서 농민들을 ‘밀수 도우미’로 활용한다. 단순히 물건만 옮겨주고 큰돈을 거머쥐니 농민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서로 하겠다며 나섰다. 그런데 조용히 일하면 될 것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떠들고 다니니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 소문은 국경경비대 군인들 귀에까지 들어가 압록강 상류에서 단속을 확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밀수업자들은 이번엔 단속이 느슨해진 하류와 공해상으로 잽싸게 집결해 다급하게 밀수 물량을 처리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8월 하순 압록강 상류 쪽 콴뎬(甸)현 지역에서 소형 선박을 활용해 밀수하는 현장을 직접 목도했다. 강 깊이가 성인 무릎에 불과한 지역에 어떻게 선박이 드나들 수 있을까? 밀수에 사용되는 선박 형태가 특이하다. 바닥이 일반 선박처럼 삼각형 모양이 아니라 뗏목처럼 넓적하고 선박 크기도 작다. 배의 중심이 잘 안 잡혀 파도에 약하고 깊은 물에서는 다니지 못하지만 얕은 물에서 이동하기엔 딱 좋다. 북한 밀수꾼들은 이처럼 상류에서 이동하기에 적합한 배를 직접 만들어 밀수에 활용한다. 통상 80㎏들이 포대에 물건을 실어 배에 싣는데 포대가 너무 커 성인 혼자 들기엔 버겁다고 한다.



“北수산물 단둥에서 중국産 둔갑해 인천港으로”북한과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A는 주로 압록강 하류에서 본인 소유 선박으로 밀수한다. 그는 8월 하순 평양의 공장에서 제조한 겨울 솜옷 2만 장을 마대 자루에 넣고 트럭 4대에 나눠 실어 신의주에 도착했다. A는 신의주에 있는 자신의 선박에 물건을 옮겨 실은 후 압록강 하류에서 단둥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으나 도중에 비가 많이 내려 모든 제품이 다 물에 젖고 말았다. 그래도 납품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말린 뒤 다림질해서 비에 젖은 흔적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A가 밀수한 의류는 중국의 유명 스포츠 브랜드로 중국 안에서만 1만 개 가까운 매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A가 정말 운이 좋고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한다. A처럼 밀수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A의 사례를 보며 “비에 젖은 옷, 한번 만져보기라도 했으면…” 하며 한숨을 쉬는 이가 많다. A는 이번 밀수 과정에 평소와 달리 국경경비대에 뇌물을 주지 않았다. 군인들이 돈을 줘도 거부하며 “밀수는 안 된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A가 아니었다.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안 보는 틈을 타 그냥 단둥 방향으로 배를 몰아버렸다. ‘될 대로 되라. 모르겠다’ 식이었다. 국경경비대가 행여 총격을 가해오면 맞대응 사격을 할 각오로 한 손엔 총을 들었다. 여차하면 총격전까지 각오했지만, 국경경비대의 추격은 없었다.



A는 북한에선 북한인 신분증을 들고 다니며 사업하고, 중국에선 중국 신분증으로 중국인 행세를 한다. 그는 현재 단둥 일대에서 북한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 4개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이뤘다. 노동자 규모는 500명가량으로 모두 불법체류자다. 소식통은 A에 대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수십 년 동안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해 “능구렁이도 이런 능구렁이가 없다”는 것이다. A는 공장 사장으로서 공식 월급은 2200위안(한국 돈 36만 원)이지만 비공식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한 달에 한국 돈 기준으로 18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단둥에선 북한산 해산물을 팔려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소식통은 8월 하순 북한산 해산물을 팔려는 북한 사업가를 만난 경험담을 전했다. 이 사업가는 주로 원산에서 채취한 성게알, 문어, 오징어, 피조개, 새조개를 팔려고 했다. 그는 “북한산 해산물은 현재 단둥 공장에서 포장해 중국산으로 둔갑한 후 인천항으로 대거 들어가고 있다”며 “너무 헐값이어서 재미를 못 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이라면 1t씩 팔 수 있다”며 직거래를 제안했다. 또 다른 북한 해산물업자는 “당에서 물고기 3000만 마리를 키우라고 지시해 키웠는데 2000만 마리가 죽어버려 지금은 1000만 마리가 남았다”며 이를 사들일 큰손을 찾기도 했다.  



단둥 당국의 단속 지시는 수시로 바뀐다. 6월 말엔 지난해 8월 이후 입국한 불법체류 북한인을 7월 말까지 내보내라고 하더니 8월 초순에는 모든 불법체류 북한 인력을 내년 1월 7일까지 내보내라고 했고, 8월 하순에는 송환 시점을 다시 올 연말로 앞당겼다.



“날마다 컨테이너 760개 물량 신의주에 쌓여”소식통은 8월 하순 만난 밀수업자 C의 말을 전했다. 단둥에서 북한 노동자 450명을 고용해 공장을 운영하는 C는 솔선수범해 인력 10%를 내보낸 뒤 공안 당국 파트너와 즐겁게 파티하며 돈독한 시간을 보냈다. 이것으로 자신의 공장은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심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공안 당국 파트너가 돌변했다. “미안하다. 북한 노동자 절대 안 되겠다. 최대한 12월 말까지 시간 주겠다. 그때까지 다 내보내라”고 말한 것이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트럼프 대통령의 8월 20일 발언, 즉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으로 과거만큼 북한 문제를 돕지 않고 있다”는 표현을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의 이 발언 이후 상부로부터 다시 특명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단둥 당국의 단속은 실제로 효력을 발휘한다. 10만 명 가까운 단둥 일대의 불법체류 인력 중 상당수가 9월 초 현재 철수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단둥의 북한 영사가 “현재 3만8500명이 잔류 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들 인력은 단둥과 그 주변의 둥강(東港), 첸양(前陽), 좡허(莊河) 등 여러 지역에서 일한다고 한다. 



중국 당국의 단속으로 단둥으로 나와야 하는 물품이 반출되지 못해 신의주에는 이들 물품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평양에서 만들어 신의주를 거쳐 단둥으로 나와야 할 물건, 그리고 신의주 공장에서 제조해 단둥으로 나와야 할 물건들이다. 신의주 건물마다 이들 제품이 꽉 들어차 있어 그 많던 빈 건물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들 제품은 평양과 개성공단, 신의주 일대의 북한 인력 35만 명 정도가 만든 것으로 주로 겨울 패딩 의류 제품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노동자 1인당 하루 평균 10장 이상 생산하니 하루에 최소 350만 장의 패딩 의류가 생산된다. 이들 제품은 보통 가로 60㎝, 세로 80㎝, 높이 40㎝ 종이 상자에 최다 20장까지 들어간다. 즉 하루 평균 17만5000개 종이 상자가 매일 신의주에 쌓이는 것이다. 10일이면 175만 개다. 20피트 컨테이너에 보통 230개 상자가 실리니 컨테이너로 따지면 매일 760개 컨테이너, 10일이면 7600개 컨테이너 분량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의주는 제품으로 미어터지게 된다. 이들 제품 가운데 10% 정도가 밀수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단둥 당국이 고강도 단속을 실시하고 있긴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 원칙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현지의 큰손들은 중국 정부의 대북 압박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둥 일대 공장들이 북한 인력에 의존하는데 이들을 다 몰아냈다간 신의주는 물론 단둥 경제도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중국 단둥 북한식당 능라도. 한복 입은 종업원이 보인다. 1월 9일 촬영했다. [윤완준 동아일보 중국 특파원]

“끝까지 단속? 그랬다간 단둥도 같이 망한다”소식통은 노동자 500∼600명이 일하는 북한산 해산물 공장을 예로 들었다. 이런 공장에는 중국 노동자도 100∼200명 정도 함께 일한다. 이런 대단위 공장이 단둥에 상당히 많이 있는데 북한 노동자를 쫓아내면 공장 가동이 어려워 중국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는다. 실직할 중국인 노동자가 최소 1만 명이나 될 수 있다. 1만 명 넘는 중국 노동자가 먹고살기 위해 시위라도 한다면 중국 정부로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단속을 집행해야 하는 현지의 공안 당국과 국경경비대 담당자들이 끝까지 갈 의지가 없다. 이미 업자들과 너무 깊은 ‘관시(關係)’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부의 지시를 어길 수도 없기에 늘 적절한 수준에서 완급을 조정할 것이다. 또한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가 있어야 짭짤한 뒷돈을 챙길 수 있으니 단속의 수위를 조절한다.  



단둥의 소식통은 고강도 단속 와중에도 당국의 일부 인사는 대북사업가와 진하게 술을 마시며 오히려 ‘관시’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해왔다. 업자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부탁은 단 하나. “네가 근무하는 시간에 내 물건 눈감아 달라”는 것이다. 단속 요원들은 보통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물건이 들어오는 시점에는 단속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다.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