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감사원·경찰청·금감원·대법원 등 노른자위 땅 차지 ● “국가기관이 서울 부동산 자존심 떠받들고 있다” ● 북촌·광화문·여의도·서초동 땅값, 임대료만 얼마? ● “금싸라기 땅 차지한 것 자체가 권위 의식의 산물”
북촌 최고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감사원. [조영철 기자]
서울 종로구 북촌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양반들이 모여 살던 한양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창덕궁과 경복궁, 종로를 지근거리에 두고 안국동, 가회동, 원서동, 재동, 계동, 삼청동이 모여 있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고 해 ‘북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가회동 한옥마을이 서울의 대표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주말, 주중 할 것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상권도 활기를 띤다. 더욱이 4~5년 전부터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한옥마을의 주택 가격은 최근 2배 이상 올랐다.
북촌의 자존심은 또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와 감사원 등의 정부기관들이다. 안국역에서 걸어서 5분 채 안 걸리는 곳에 헌법재판소가 있고, 거기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감사원이 있다. 두 기관 모두 외관도 동네 분위기에 걸맞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위엄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금싸라기 땅이라 할 수 있는 북촌에 이러한 국가 권력기관들이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기관 특성상 민원 처리 등 시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는 곳들이다.
증축으로 외관 부풀리는 헌법재판소
지난해부터 증축 공사 중인 서울 종로구 재동 소재 헌법재판소. [조영철 기자]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는 증축을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 인근 직장인 최모 씨는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담장도 허물고 건물도 새로 짓는다고 하는데, 글쎄 시민들이 헌재와 소통하기를 얼마나 원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공사 가림막이 인도를 절반 이상 점령해 통행에 불편함이 크다”고 호소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26일 청사증축 기공식을 치렀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증축 건물에 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공법전문도서관과 민원인 전용 상담 공간, 북카페, 역사전시실, 휴식 공간 등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도서관 건물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도시계획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청사증축위원회와 문화재위원회가 따로 꾸려졌다. 증축 건물은 연면적 7800㎡에 지하3층, 지상2층 규모이며 총 공사비용은 172억 원 정도다. 완공 예정일은 2019년 12월이다.
국가 소유의 공공택지를 시민들과 함께 사용하겠다는 점에서는 그 타당성이 인정되지만, 당초 정부기관이 고가의 땅을 차지하면서 벌어지는 ‘비효율성’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외국의 경우를 보면 정부기관은 대체로 임대료가 싼 외곽에 다 몰려 있다. 우리나라도 처음부터 서울의 중심이 아닌 외곽에 정부기관들이 들어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일부 정부기관들은 이와 무관하게 건축 당시부터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부자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건물을 기득권 유지 방편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공원이나 미술관 등 공공의 복지를 위해 돌려주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깔고 앉은 땅값만 천억 단위
그렇다면 현재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국가기관들의 부동산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해당 건물의 땅값과 임대료를 주변 오피스 임대료 시세에 맞춰 기계적으로 계산해봤다. 단, 정확한 산정은 불가능한 만큼 건물의 용도나 층수 등을 따로 고려하지 않았다.
먼저 헌법재판소와 감사원이 위치한 북촌은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용도변경이 자유롭지 못해 위치에 따라 가격차가 크다. 헌법재판소처럼 도로변에 있는 상가는 땅값이 3.3㎡(1평)당 5000만 원을 웃돈다. 등기상 헌법재판소의 전체 부지는 1만6197.1㎡(4899평), 건물은 2449.27㎡(740평) 규모다. 주변 시세대로 하면 땅값만 2449억5000만 원 정도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등기상 감사원은 전체 부지 22142.9㎡(6698평)에 총 5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지상 8층 규모의 본관은 1층 1656.83㎡(501평), 2층 1456.83㎡(440평)이고 3층부터 8층까지는 979.87㎡(296평)다. 부지 3.3㎡당 가격을 3500만 원으로 잡으면, 땅값만 2344억3000만 원. 건물 임대료는 3.3㎡당 5만 원으로 치면 1·2층 합쳐 5000여만 원, 3~8층까지는 7400만 원 된다. 그 밖에도 815.98㎡(246평) 규모의 4층 건물과 187.5㎡(56평) 1층 건물, 793.84㎡(240평) 3층 건물(식당), 812㎡(245평) 규모의 4층 건물이 있다.
광화문 소재(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은 등기상 16012.5㎡(4843평) 규모의 토지에 지하 1층, 지상 15층 본관과 지상 3층 규모의 민원동, 지하 1층 지상 4층의 직장어린이집이 등이 있다. 본관 1층은 47283.95㎡(1430평), 2층·3층은 3745.20㎡(1132평)와 3294.90㎡(996평)이고, 4층부터 15층까지는 1782㎡(539평)이다. 민원동은 1층 245.52㎡(74평), 2·3층은 194.96㎡(58평)이고, 어린이집 건물은 1층 111.04㎡(33평), 2·3층 338.17㎡(102평), 4층 127.99㎡(38평)다.
주변 평균 땅값은 3.3㎡당 5000만 원으로, 서울지방경찰청 부지 가격은 약 2421억5000만 원에 달한다. 인근 오피스 임대료는 3.3㎡당 12만 원 선이고, 40·50평 오피스는 월세가 350만~4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지방청 본관을 임대한다고 가정하면 본관 1층 임대료는 1억2000만 원, 2·3층은 8000만 원, 4~·5층 4억8000만 원가량 된다.
경찰청 임대하면 10억 원?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 역시 규모가 비슷하다. 대지 규모는 1만5162.6㎡(4586평)이고, 건물은 본관·북관·남관·어린이집 등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본관은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로 1층 1825.88㎡(552평), 2~15층 1831.60㎡(553평)다. 지상 8층 규모의 북관은 1층 1104.83㎡(333평), 2~8층 1082.94㎡(327평)이고, 지상 4층으로 지어진 남관은 1층 488.12㎡(147평), 2~4층 499.28㎡(150평) 규모다.
현재 경찰청 주변 오피스 월 임대료는 30평 기준 300만 원. 따라서 본관 예상 임대료는 1층 5500만 원, 2~15층 7억7000만 원이고, 북관 1층 3300만 원, 2~8층 3200만 원, 남관 1층 1400만 원, 2~4층은 4500만 원가량 된다. 이를 다 합쳐보면 경찰청에서만 발생하는 월 임대료는 9억4900여만 원이다.
여의도로 넘어가면 부동산 가격은 더 뛴다.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증권타운’ 맞은편에 위치한 금감원은 대지 6612㎡(2000평)에 지하 4층 지상 20층 단독 건물로 이뤄졌다. 1층 2400.23㎡(726평), 2층 2133.07㎡(645평), 3층 2030.08㎡(614평), 4층부터 19층까지 2393.2㎡(723평), 20층 2269.93㎡(686평)이다.
여의도 토지 시세는 3.3㎡당 1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5000여 평에 달하는 여의도 MBC 방송국이 6000억 원에 매각됐다. 오피스 임대료는 50평 규모일 때,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500만 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금감원의 땅값과 임대료를 계산해보면 토지는 2000억, 건물 전체 임대료는 13억가량 된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기관은 다름 아닌 서초동 소재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대검찰청 등이다. 부지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대법원 5만7997.7㎡(1만7544평), 고등법원 8만2382㎡(2만4920평), 검찰청 3만9095.9㎡(1만1826평)이다.
3.3㎡당 1억 넘는 땅 깔고 앉은 법원
서울 서초동 소재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외관. 인근 땅값은 3.3㎡당 1억 원이 넘는다. [동아DB]
주변 오피스 임대료는 30평 기준 월 400만 원 선으로, 대부분이 변호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여기는 법조계 사람들이 절대로 나가지 않는 곳이라 임대 물량이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강남 사람들이 어떻게든 강남을 사수하려고 하는 것처럼 정부기관들도 비싼 땅에 있어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 역시 “부동산 광풍으로 비서울 거주자들의 박탈감이 더욱 커지는 요즘, 서울 최고 비싼 땅에 근엄하게 서 있는 국가기관들마저 서민의 기를 죽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