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원대 양식, 한식 제공… 주민 만족도 높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9월부터 조식 서비스를 실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부들이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집안일에서 하루라도 헤어나고 싶기 때문. 누군가 해주는 밥을 먹고, 청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것은 주부 대부분이 꿈꾸는 ‘소확행’이다.
아파트 조식도 그런 주부들의 욕구를 겨냥하고 있다. 아침 일찍 노곤한 몸을 일으켜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챙기는 일은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서야 누구든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워킹맘의 경우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시간에 식사까지 챙기기란 기적에 가깝다.
9월부터 조식 서비스 실시
이런 이유로 ‘조식 제공 아파트’는 늘 화제를 모은다.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는 아파트 입주와 함께 조식 서비스를 실시한 뒤 지금까지 운영 중이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도 올해 9월까지 1년간 조식 서비스를 실시했다. 해당 아파트들은 서울 시내 몇 안 되는 조식 제공 아파트로 유명해졌다.
해당 아파트는 단지에 카페 3곳이 있는데 그중 단지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동의 1층 티하우스에서 조식을 판매한다. 메뉴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총주방장을 지내고,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VIP 라운지 운영을 총괄한 배한철 셰프가 구성했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6시 30분부터 오전 9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는 오전 7시부터 9시 30분까지로 3시간가량 서비스된다.
티하우스 공간에 비해 조식 서비스를 하는 직원의 수는 많은 편이었다. 계산대에 직원 네댓 명이 서서 음식을 계속 세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가격은 양식 7800원, 한식 6800원. 직원에게 “어느 쪽이 더 인기가 많으냐”고 물으니 “양쪽 모두 잘 나가는 편이다. 그날그날 매진되는 메뉴가 다르다”고 답했다.
양식을 주문한 뒤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진동벨을 받아 자리를 잡고 기다리면 된다. 입주민 카드로 결제하는 티하우스 카페 메뉴와 달리 조식은 신용카드나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조식 서비스 시간에는 티하우스 문이 열려 있어 아파트 입주민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직원은 “입주민이 아닌 분도 드실 수 있긴 하지만 이른 시간에 여기까지 찾아와 먹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식을 담은 그릇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기그릇이었고, 포크와 나이프도 조명이 반사될 정도로 깨끗해 호텔 레스토랑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메뉴는 빵과 스프, 커피와 요구르트 시리얼 등이었다. 빵은 애플파이, 크루아상, 스콘 등 3종이었는데 모두 갓 구운 맛이었다. 직원에게 물으니 “매일 아침마다 오븐을 가져와 굽는다”고 했다.
정성들인 호텔식 조식 느낌 물씬
한식으로는 나물 비빔밥에 된장국, 수란과 요구르트 시리얼이 나왔다. 비빔밥은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데, 보기와 달리 나물향이 향긋했고 식감도 괜찮은 편이었다. 된장국도 웬만한 시중 음식점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수란 역시 탁 터뜨렸을 때 노른자가 살짝 흘러내릴 정도로 적당히 익고 양념과도 잘 어우러져 먹는 즐거움이 더했다. 무엇보다 조식에 수란이 포함돼 격이 높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식은 양식보다 1000원 저렴한 데다 더 든든히 먹을 수 있어 노년층과 남성,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실제로 노부부 한 쌍은 한식 메뉴 두 개를 각각 주문해 여유 있게 식사한 뒤 자리를 떴다. 한 입주민은 “사진으로는 양식이 더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먹으니 한식이 더 포만감이 느껴졌다. 유치원생인 아이도 잘 먹어서 앞으로는 주로 한식을 주문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크로리버파크 조식 서비스는 주민 의견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커뮤니티센터 직원은 “현재는 시범운영 중이다. 연중무휴이며 공휴일은 오전 10시까지 운영하는 등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렸다. 주민 만족도가 높은 편인데, 양이 적다는 불만사항이 있어 추후에는 분량을 더 늘려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 조식은 전반적으로 양보다 질에 치중해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듯했다. 또 음식은 맛뿐 아니라 분위기로도 먹기 마련이라 식기류를 정갈하게 세팅해 이용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메리버스트 관계자는 “운영 3주 차인데 입주민 반응이 좋은 편이다. 사실 티하우스는 평소 음료를 판매하는 공간이라 음식을 제공하기에는 다소 협소하다. 그곳을 아침시간에 3시간 동안 빌려 조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고충이 있다. 다행히 아파트 측에서 도움을 줘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다. 호텔식 조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서 노하우를 갖고 노력하는 만큼 향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조식 서비스를 제공해 화제가 된 아파트는 성수동 트리마제로 알려졌다. 입주 초부터 9월 현재까지 1년 4개월간 꾸준히 입주민에게 조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6000원에 한식과 양식 등을 선택해 먹을 수 있고, 식단은 매일 달라지며, 일주일 식단표가 미리 나온다. 입주민 카드로 계산하면 관리비에 포함돼 한꺼번에 결제하는 방식이다.
음식 제공 업체는 ‘신세계푸드’. 한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 후기를 남긴 입주민은 ‘자극적이지 않고 반찬도 신선하며 양도 적당하다. 단지 내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조식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해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반포리체도 지난해부터 조식을 제공해 화제를 모았다. 해당 단지는 오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내 북카페에서 조식 세트 메뉴를 제공했다. 비용은 인당 5500원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판매했는데, 취학자녀를 양육하는 입주민이 많아 호평을 받았다.
반포리체 조식 서비스는 9월 중순까지 운영되다 현재 일시 중단된 상태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업체 사정으로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정해진 바 없다”고 답했다.
아파트 조식 서비스 운영 주체는 입주민이다. 입주민 대다수가 아파트에서 조식을 먹길 원하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안건을 의결해 운영하면 된다. 현재 조식을 제공하는 아파트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 자체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주로 지은 지 10년 이내 신축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이유는 조식을 서비스할 수 있는 공간인 ‘주민 공동 커뮤니티’가 단지 안에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입주민 만족도가 높긴 하지만 이는 고스란히 주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단점도 있다. 조식 운영업체 선정 비용, 시설 이용에 따른 관리비 등 일부는 주민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조식운영 업체가 어떻게 계약하느냐에 따라 부담 비율이 달라진다. 하지만 아파트 시설 운영비로 필수불가결한 지출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서비스되지 못하고 일정 기간 후 중단되는 경우도 생긴다. 아크로리버파크도 지난해 초 약 3개월 동안 서울가든호텔과 계약을 맺고 스카이라운지에서 뷔페식 조식 서비스를 1만5000원에 제공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아파트 조식 서비스가 이벤트성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케이터링 업체 관계자는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1회성 이벤트 음식은 참석자를 가늠할 수 있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파트 조식 서비스는 매일 제공해야 하는데 반해, 이용자 수가 일정치 않아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입주민이 갑의 위치에 있고, 재계약 시점에는 입주민 평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적어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57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