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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재명 “마음 잘 맞는 조승우…나이 들면 ‘꽃보다 할배’ 같이 찍을래?”

입력 | 2018-09-27 06:57:00

20년 이상 연극에 몰두했던 배우 유재명이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9월 한 달간 선보인 작품이 ‘명당’을 포함해 다섯 편인 그는 “살다보니 별일 다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명당’ ‘라이프’ 등 9월 한 달간 영화·드라마 5편 소화…명품배우로 거듭난 유재명

스무살, 우연히 연극보고 연기 미쳐
우연히 찾아온 ‘응답하라’…인생 2막
세 작품 호흡 조승우, 둘도 없는 절친
메시지 분명한 작은영화 출연도 꾸준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고 직감했다. 머지않아, 이 배우의 ‘시간’이 오리라는 사실을. 당시 유재명(45)을 본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어느 것 하나 꼬투리 잡을 수 없는 연기력을 갖췄으니 말이다. 꼭 1년이 지났다. 유재명은 이젠 영화나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내뿜는 카리스마는 또 어떤가. 9월 한 달간 그가 선보인 영화가 세 편, 드라마도 두 편이나 된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유재명을 찾고 있다는 의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본 연극에 빠져, 20년 넘도록 오로지 연극에만 몰두해 살아온 그에게 ‘새로운 삶’이 열리고 있다.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지금의 상황에 그가 툭 내뱉은 한마디, “살다보니 참, 별 일 다 있다.”

● “연극은 내게 ‘열병’…7년 전 서울로 도피”

유재명은 이번 추석에 영화 ‘명당’으로 관객과 만났다. 주연을 맡은 다양성영화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 역시 동시에 극장서 상영하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라이프’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와중에 단막극 ‘탁구공’까지 소화했다. 그는 “‘이거 안하면 후회 하겠다’ 싶은 마음에 한 편씩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생선 장사를 하면서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께 “효도하자”는 생각에 등록금 싼 국립대(부산대)에 진학했다. 전공도 연기와는 무관한 생명공학을 택했다. 특별한 꿈이 없던 인생은 대학에 입학한 직후 달라졌다.

“입학한 3월에 우연히 연극을 봤다. 상여 나가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다. 연극에 미쳤다. ‘열병’ 같은 게 있었다.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으니 말 다했지. 어머니께서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집에도 안 오고 연극하면서 술 먹고 다니니까. 그런 게 오랜 내 삶이었다.”

영화 ‘명당’ - ‘죄 많은 소녀’ - ‘봄이가도’(왼쪽부터)에서의 유재명.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CGV아트하우스·시네마달


유재명은 30대 중반에 부산에서 극단을 만들고 연출까지 했다. 극단 이름은 배우, 관객, 공간을 줄인 ‘배관공’. 그의 표현에 따르면 “예술병에 걸린 뜨거운 때”였다. 그러는 틈틈이 부산서 촬영이 진행되는 영화에 단역으로 참여해 돈을 벌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7년 전 돌연 상경했다. “외유성 도피”라고 했다.

“너무 많은 열정을 쏟다가 번아웃! 아무런 계획 없이 서울로 왔다. 선배들 만나고 연극도 볼 심산이었다. 그렇게 눌러앉았다. 마흔 살까지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나름 홈그라운드 인프라도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까, 이거 원.(웃음) 아는 사람들 따라 영화사에 프로필도 냈지만 안 됐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이제 내려가야지’ 했다.”

바로 그때 유재명은 자신의 연극을 보러온 지금의 매니저를 만났고, 그 직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서울살이는 녹록치 않았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성북구의 한 옥탑방. 경제적으로 나아진 지금은 근처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유재명은 요즘도 가끔 그 옥탑방을 찾아간다고 했다.

“옥탑방 앞에 가서 그 집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간절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힘들었지만 뜨거운 때였다. 지금은 일도 많고 행복할 수 있지만, 어쩌면 위기일 수도 있다. 인생이 열 바퀴의 레이스라면, 나는 다섯 바퀴를 100미터쯤 앞둔 상태다. 레이스를 잘 완주해야 한다고, 늘 새기고 있다.”

● “내 연기에 비린내가 나면 뒤통수를 때려줘”

유재명은 지난해 ‘비밀의 숲’으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때에 영화 ‘명당’을 택했다. “인생의 캐릭터를 만났지만 연기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흰 머리카락이 확 올라올 정도로 힘든 드라마”를 마치고 한동안 쉬고 싶었지만, 시나리오 속 구용식이란 캐릭터에 마음이 흔들렸다.

“얼굴 작은 꽃미남들 사이에서 벌에 쏘인 단 한 사람처럼, 잔망을 떠는 구용식이란 인물이 날갯짓하는 게 좋았다. 자기만의 신념을 가진 조력자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민초의 생활력을 보이는 인물이다.”

‘명당’에 함께 출연한 배우 조승우는 이제 유재명을 이야기할 때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비밀의 숲’부터 ‘라이프’까지 내리 세 편을 같이 했다. 그는 조승우와 처음 촬영장에서 만나 연기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서로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그런 느낌이다.

“승우가 서른 편을 같이하고 싶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그건 너무 먼 이야기다. 하하! 언제, 어느 때든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와! 반갑네 친구!’ 하면서 같이 연기할 친구다. 훗날 ‘꽃보다 할배’를 하게 된다면 꼭 같이 가고 싶은 친구이고.”

배우 유재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앞으로도 ‘마약왕’, ‘나를 찾아줘’ 같은 상업영화로 관객을 만나게 될 유재명은 한편으론 메시지가 분명한 작은 영화들에도 주력한다.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에 이어 예술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주연영화 ‘속물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다.

“술자리에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은지 물어보는 후배들이 한둘씩 생겼다. 그럴 땐 솔직하게 말한다. 연기를 안 해도 된다고. 우리 때와 다르지 않나. 연기 말고도 더 행복한 일이 분명 있다. 나도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졌다. 배우가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절망하지 않길 바란다. 나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유재명은 친한 후배와 동네를 산책하면서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을 들려줬다. “내 연기 비린내가 나면, 뒤통수 때려달라고 했다. 열심히 달려서 잘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중심’은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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