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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장모 씨(26)는 최근 80만 원 상당의 고성능 휴대용 녹음기를 구매했다. 휴대전화로 녹음하면 음질이 좋지 않고 배터리가 방전되면 녹음이 끊기기 때문. 그는 새로 산 녹음기로 술자리를 함께 한 여성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다. 성관계를 가진 뒤 여성이 마음을 바꿔 자신을 고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카카오톡으로 여성과 대화할 때는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의도적으로 보내고 상대방의 애정표현을 유도한다. 30여 명의 남성들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억울하게 성범죄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생존 수칙’을 공유하기도 한다.
장 씨처럼 ‘성범죄 가해자 안 되기’ 생존 수칙을 공유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달 초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 논란이 불거지면서 남성들의 불안과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 사건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남성의 아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린 글에 참여한 인원이 3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긴 인터넷 카페에는 4000여 명이 가입했고, 다음달 27일 집회를 열 예정이다.
남성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대처 방안을 공유한다. 버스나 지하철 등 인파가 붐비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휴대전화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조모 씨(26)는 지하철을 탈 때 의식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켜둔다. 휴대전화를 끄고 손에 쥐고 있으면 ‘몰카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 씨는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휴대전화 뒷면 카메라를 아래쪽이 아닌 천장을 향하도록 각도까지 신경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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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목격자나 물증을 찾기 어렵고, 여성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성범죄의 특성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유진영 변호사는 “잘못이 없어도 무혐의를 입증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녹음이나 카카오톡 대화를 방어 수단으로 여기는 생존 수칙이 유행처럼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가해자 안 되기 생존 수칙을 공유하는 움직임에는 여성을 잠재적 ‘꽃뱀’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며 “여성을 성범죄의 원인 제공자로 치부하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