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시간표 없이 비핵화 진행 강조
스테이플러로 찍고 접은 ‘김정은 친서’ 26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롯데팰리스호텔에서 가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때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내온 친서라고 소개하고 있다. 외교 관례상 정상의 친서는 접지 않는데 이 종이는 접혀 있었으며 위쪽 귀퉁이는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었다(작은 사진 점선 안). 뉴욕=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비핵화를 두고 북한과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은 비핵화 시간표를 따르기 위해 북한에 끌려다니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그들(북한)이 당신에게 그것(시간 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 비핵화가 오래 걸린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게) 나는 ‘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여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비핵화 협상은 미국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음을 내비쳤다.
○ 北, 사찰 검증 수용 입장 전했을 가능성 제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과 열린 자세를 전달받은 미국 또한 핵 물질 및 핵시설 신고 방식에 있어 일괄 신고를 고수했던 기존 입장에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이나 영변 핵시설, 개별 미사일 등으로 쪼개 각기 신고로 선회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특정한 시설, 특정한 무기’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시간을 벌어 주는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3년은 앞서 미국이 언급했던 비핵화 타임라인에서 늦춰진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남북 정상이 1년 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몇 차례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19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로 비핵화 시점을 확인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과 길고 성과 없는 협상을 해 북한이 군비를 확장하게 내버려뒀다고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 안보리 회의 주재한 트럼프, 대북 제재 유지 강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까지 직접 주재하면서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기 전까지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 ‘선 비핵화, 후 체제 보장’ 원칙을 전 세계에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결의해 온 안보리 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비핵화 속도를 내는 데 지렛대로 쓸 대북 제재의 고삐를 직접 틀어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제재를 느슨하게 풀어 주고 있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 데다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합의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비핵화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북한은 더 많이 해체할 것이다. 스스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지만 여러분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뒤편에서 많은 일이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미사일 기지 해체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핵 동결 조치 외에 기존 핵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