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강민. 스포츠동아DB
30대 중반을 지난 시점. 시즌 내내 부진한 1년을 지난 뒤 반전을 꿈꿨으나 개막 직후 1군에서 말소됐다. 베테랑의 가치가 날로 떨어지는 KBO리그에서 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3개월의 절치부심이 달라진 결과를 만들었다. SK 와이번스 2위 수성의 숨은 주역 김강민(36)의 이야기다.
● 최악의 부진으로 되찾은 자신감
김강민은 지난해 88경기에만 출장해 타율 0.219에 그쳤다. 데뷔 이후 최악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절치부심으로 2018시즌을 준비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됐으나 3경기에 대수비로만 출장, 한 타석에도 들어서지 못하고 1군에서 말소됐다. 단순한 조절 차원이 아닌 기약 없는 2군행이었다.
“2군이 있는 강화에 내려가서는 한탄이 의미 없었다. 마인드부터 타격폼까지 모두 백지로 만든 뒤 시작했다. 정상궤도에만 올려놓는다면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2군에서 결과가 나오니 자신감이 붙었다. 부정적인 것은 모두 강화에 두고, 그 자리를 자신감으로 채웠다. 내 야구인생이 올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돌이켜보면 올 초의 2군행은 향후 야구인생의 큰 자산일 것이다.”
6월 13일 1군에 재등록된 김강민은 이후 단 한 번도 말소되지 않았다. 성적 자체가 뛰어났다. 콜업 직후 잠시간의 적응기를 거친 뒤 70경기 출장 타율 X. 특유의 짐승 수비가 여전한 데다 타격 성적까지 괜찮으니 SK로서는 외야 고민을 크게 덜었다.
SK 김강민. 스포츠동아DB
● 마지막 남은 ‘왕조 외야수’의 목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사상 첫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번의 우승. 2000년대 후반의 SK를 ‘왕조’로 칭하는 데 이견은 없다. 당시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이 고루 섞인 SK의 왕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 5년간 두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와일드카드 결정전 이상을 넘지 못했다.
왕조 초창기 고참들은 이미 유니폼을 벗은지 오래이며 젊게만 보였던 이들도 어느새 베테랑이 됐다. 김강민과 함께 왕조 외야를 구축했던 조동화와 박재상은 모두 유니폼을 벗고 코치가 됐다. 김강민은 마지막 남은 왕조 외야수다.
김강민으로서는 단타나 볼넷으로 1루에 걸어 나가 박재상 코치와 마주하던 것이 어색했던 때도 있지만, 마냥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다. “2001년 SK에 입단한 신인은 나까지 총 13명이었다. 지금 팀에 남은 이는 나와 (채)병용이 뿐이다. 타 팀으로 범위를 넓혀도 (정)상호(LG 트윈스)를 제외하면 동기가 없다. 어느새 나도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프로 초창기 우승이 익숙했던 김강민과 SK는 2010년을 끝으로 반지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다. 김강민의 ‘유니폼 벗기 전 마지막 목표’가 우승인 것이 당연한 이유다. 그는 “우승은 해본 사람들이 더 욕심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두산 베어스가 당시 우리와 비슷한 것 같다. 2015년 우승 이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아닌가”라며 “열 번을 우승해도 열 한 번째 트로피가 탐날 것이다. 유니폼 벗기 전까지 반지 하나는 더 추가하고 싶다. 기회가 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