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쌀값, 너무 올랐다는데…
최근 쌀값이 전년보다 30% 이상 오르면서 시중에는 북한에 쌀을 퍼줘 공급이 부족해진 탓이라는 괴담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주원인은 정부가 쌀 매입량을 늘린 뒤 방출을 제때 하지 못한 데다 지난해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사진은 지난달 부산 강서구의 한 논에서 촬영한 수확기 벼의 모습이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 쌀 방출 시기 놓친 데다 작년 생산도 감소
북한에 쌀을 퍼줘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문은 쌀을 유통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유통업체들이 재고 부족을 호소하면서 증폭됐다. 올 1∼3월 산지유통업체가 보유한 재고량은 1년 전보다 35만∼37만 t가량 적었다.
실제로 최근 쌀값이 급등한 주된 원인은 정부가 쌀 매입량을 늘린 뒤 방출을 제때 하지 못한 데다 2017년산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쌀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편승해 일부 농가가 출하 시기를 늦추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분석에 정부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실제 2016년산 쌀값이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지난해 정부는 쌀값을 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 시장에서 남아도는 쌀을 모조리 사들였다. 정부가 사들인 2017년산 쌀은 공공비축미 35만 t과 시장격리물량 37만 t을 합해 72만 t에 이른다. 2016년에도 69만 t가량을 사들였지만 그때는 쌀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3만 t 많았다.
정부가 사들인 양은 늘었는데 2017년산 쌀 생산량은 397만 t으로 2016년(420만 t)과 2015년(433만 t)보다 5∼8% 줄어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벼 재배면적이 1년 전보다 3.1%가량 줄어든 75만5000ha에 그친 데다 봄 가뭄 등으로 작황이 부진했던 탓이다. 시중에 풀린 쌀이 예년보다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확기 쌀값은 올라갔다. 이를 본 일부 농가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출하를 미뤘다. 경기도에서 민간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쌀값이 오를 조짐이 보이자 일부 대농(大農)들이 쌀을 내놓지 않아 물량이 더 모자랐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정부는 사들였던 쌀을 시장에 내놨지만 가격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4, 6, 8월 세 차례에 걸쳐 총 22만2000t이 추가로 풀렸지만 이미 올라간 쌀값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쌀 재배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폭염과 병충해 등으로 작황이 부진하다는 소문이 더해지면서 가격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8월 말 기준으로 160만 t의 쌀 재고물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가격 하락을 우려해 더는 방출하지 않았다.
갑자기 높아진 쌀값을 바라보는 소비자와 농업인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소비자들은 “안 그래도 밥상물가가 크게 올라 힘든데 쌀값까지 오르니 부담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쌀을 취급하는 식당이나 떡집 등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농업인들은 ‘풍년으로 2013∼2016년 계속 폭락했던 쌀값이 제자리를 찾은 것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추석 직전인 20일 가진 출입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산지 쌀값은 5년 전 수준”이라면서 “현재 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비축미를 방출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밝혔다. 실제로 5년 전인 2013년 10월의 평균 쌀값은 80kg당 17만8551원으로 올 9월 가격보다 높았다.
○ 올 수확기 쌀값도 작년보다 높을 듯
쌀값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는 올해 하반기에 정해질 쌀 변동직불금의 목표가격이다. 정부는 목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의 차액을 농가에 보전해줘야 한다. 정부로서는 실제 쌀값이 비싸져야 직불금에 드는 예산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재정 부담을 덜려고 적극적으로 쌀값 안정에 나서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쌀값 오르니 ‘직불금 예산’ 대폭 절감 ▼
농가 소득보전 위해 2016년 ‘쌀 변동직불금’ 1조4900억 투입
농업인 소득보전제도인 쌀 변동직불금은 정부가 매년 쌀의 목표가격을 정해 놓고 실제 쌀값이 이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쌀값이 하락한 2014∼2016년 변동직불금 규모는 급증했다. 2011∼2013년산(産)에는 아예 지급되지 않았던 변동직불금이 2014년산에는 1941억 원, 2015년산에는 7257억 원 지급됐다. 20년 만의 최저가격으로 폭락한 2016년산 쌀에는 무려 1조4900억 원이 투입됐다.
정부 지출이 증가하자 쌀 변동직불금제는 대표적인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산업 발전에 쓸 수 있는 막대한 돈을 직불금으로 지출해야 되냐’는 볼멘소리도 많았다. 쌀값이 오르자 비로소 변동직불금 증가세가 꺾였다. 정부가 2017년산 쌀에 지출한 변동직불금은 5392억 원으로 2016년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내년 예산에도 변동직불금은 5775억 원이 반영돼 있다.
쌀 목표가격은 5년에 한 번씩 다시 설정한다. 정부는 2019∼2023년 적용할 목표가격을 올해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확정해야 한다. 현재 80kg당 18만8000원인 목표가격을 두고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소한 19만4000원 이상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