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에스토니아 탈린
동쪽에서 바라다보이는 올드타운의 중세도시 모습. 한가운데 첨탑(69m)은 톰페아 언덕마루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이고 그 앞 첨탑(64m)은 옛 시청(15세기)에 부속한 것이다. 정면 아래 두 감시탑이 올드타운 정문 격인 ‘비루게이트’로 15세기 성벽의 방호시설이다. 비루게이트 안쪽이 올드타운이며 S자형의 저 길이 중앙로인 비루 스트리트다. 소코스솔로 탈린(호텔) 24층에서 촬영. 탈린(에스토니아)에서 summer@donga.com
낮 12시 반. 메가스타호는 예정대로 헬싱키 남방 80km 탈린항(D터미널)에 정박했다. 이 두 시간의 배 여행. 특별했다. 배에 탄 사실을 잊고 지내서다. 정숙한 운항과 쇼핑몰에 온 듯한 착각이 핵심. 열두 갑판(12층)에 승객 2800명을 태우는 대형 여객선(길이 212m, 폭 30.6m)에선 진동조차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선실(2개 층)은 수십 개의 식당과 술집, 상점 그리고 라운지로 꾸며졌다.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맥주 홀짝이고 쇼핑에 열중하면 거기가 배란 걸 잊을 수밖에 없다.
13세기 중세부터 19세기 근대까지 700년 세월이 건축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탈린 올드타운의 성벽 골목. 그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돼 보호를 받고 있다. summer@donga.com
탈린항은 서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동서 무역 거점. 13세기 십자군전쟁기에 예루살렘의 관문 아코(이스라엘) 수호를 기치로 창단한 튜턴기사단(예루살렘 성모마리아의 독일형제회)이 탈린을 교화시킨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탈린에선 중세건축이 온전한 올드타운이 곧 역사. 한자동맹 도시에서 교회는 상인조합과 길드(장인공동체)의 활동 중심. 그 도시를 2.1km 성벽(최고 15m)으로 요새화한 건 축적된 부를 지킬 필요성의 산물이다. 그런 교회가 42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시대별 문화양식으로 그리스와 러시아정교회, 로마가톨릭, 루터교 등 신구 기독교의 다양한 종파가 앞다퉈 건축한 것이다. 그런 올드타운을 상징하는 색상은 주황빛. 중세건물 지붕의 진흙을 이겨 구운 기와에서 발산되는 중세본색(中世本色)이다.
올드타운의 타운홀 광장. 올드타운은 13세기 이후 역사가 이 돌길과 건축에 녹아들어 걷는 것 자체로 시간여행을 체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summer@donga.com
물이 좋으면 발달하는 게 있다. 양조 과정에 병입량의 7배에 달하는 물을 쓰는 맥주다. 에스토니아라고 예외일까. 이곳 맥주 역시 오랜 역사로 정평이 났다. 1000년 이상 수출된 보리, 밀, 호밀(맥주와 위스키의 원료인 볏과 1년생 작물) 산지란 게 근거다. 양조 역사는 민족 기원과 동일시할 정도로 유구한데, 맥주를 뜻하는 ‘비루(Viru)’가 그 증거. 핀란드어로는 이 비루가 에스토니아를 지칭한다. 그건 고대국가 ‘비루마’(Virumaa·비루의 땅)에서 유래했는데 당시 주민 ‘비로니안(Vironian)’은 핀란드 민족인 핀(Finn)족의 일단. 두 나라는 언어(우랄알타이어족)도 조상도 한뿌리다. 올드타운의 중심 문 ‘비루게이트’(Viru Gates·14세기 축조된 요새 일부), 그 문을 지나는 올드타운 중심가의 비루 스트리트 모두 비루마에서 왔다. 맥주 비루도 거기서 왔으니 ‘민족=맥주’인 이곳이 맥주의 땅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타르투(제2 도시)에서 양조되는 맥주 중엔 ‘비루(Viru)’란 브랜드까지 있다. 여기선 유럽에서 가장 깊은 곳 샘물로 만든다고 광고한다. 내가 묵던 소코스와 연결된 쌍둥이 호텔도 이름이 비루다.
탈린(에스토니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 정보
에스토니아 유로화 사용 유럽연합(EU) 국가. 탈링크 승객은 출입국 검사 면제. 탈린에서 곧장 귀국하려면 예약(핀에어)할 때 탈린∼헬싱키(구간) 추가.
탈린 에스토니아 수도. 헬싱키∼탈린 여객선(80km 2시간 소요·하루 6회 왕복) 운항. 항공기는 30분 소요. 물가는 헬싱키에 비해 저렴한 편. 대개 2개 언어(에스토니아어,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탈린 시내는 교통패스로 전차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올드타운의 비루게이트 앞 소코스호텔에 묵을 경우 24층 테라스에서 올드타운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인근 래디슨 블루스카이호텔의 ‘라운지24’는 야경 전망소. 올드타운의 전망대는 톰페아 언덕(고도 47m)에 두 곳. 주황색 지붕의 올드타운 전경이 발트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유럽 최고(最古)약국 레아프테크(Raeapteek)는 올드타운 중심 타운홀 광장에 있다.
텔레스키비 폐허가 된 구소련 치하 공장(탈린역 앞)을 개보수해 식당 쇼핑센터 아트스튜디오로 활용 중인 지역. 휴일엔 벼룩시장이 선다. ‘텔레스키비 창조 도시(Teleskivi Creative City)’가 공식 명칭. ‘F-Hoone(에프호네)’는 그런 바람을 이끈 선도적인 레스토랑. 구소련 시대의 암울함이 여전한 공간에서도 안락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실내디자인이 핀란드 못잖은 디자인 국가라는 칭찬이 과찬이 아님을 알게 한다. 음식도 훌륭하다. 비루게이트 앞에서 전차(1·2번)로 13분.
식당 ◇레이브 레스토랑: 올드타운 내 성벽 감시탑의 벽 밑 정원에 위치. ‘레이브(Leib)’는 에스토니아인이 즐겨 먹는 검은 빛깔의 호밀빵. 따끈할 때 소금버터와 함께 낸다. ◇파유빌라(Paju Villa): 페스퀼라보그 숲 부근의 고급주택을 개조한 식당. 소뺨 살(Beef Cheek)이 압권. 비루게이트에서 전차(18번)로 21분(택시 8km·11분). 페스퀼라보그에서 3.5km(택시 8분).
핀에어 유럽 최단거리 항로인 인천∼헬싱키를 매일 직항(8∼9시간 소요). 기내판매 면세품에 무민 캐릭터 및 마리메코, 이탈라 디자인 브랜드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