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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이미지 관리 위해 소각 관행… 최근 ‘업 사이클링’ 등 대안 떠올라

입력 | 2018-09-29 03:00:00

英 명품 ‘버버리’ 재고품 소각 중단으로 본 럭셔리 브랜드 재고 관리




영국 런던 본드 스트리트의 ‘버버리’ 매장. 버버리도 다른 고급 명품 브랜드 제품 소각과 마찬가지로 환경오염 논란이 계속되자 이달 초 재고 소각 중단을 선언했다. 스카이뉴스 캡처

“재고품 소각을 전면 중단하겠다.”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가 이달 초 앞으로 재고 상품을 불태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5년간 약 1320억 원어치의 물품을 소각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두 달 만이다. 버버리 측은 “소각 과정에서 얻은 에너지를 친환경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책임감 있는 폐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아예 소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재고상품 소각은 업계의 관행처럼 여겨진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페라가모, 프라다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고급 브랜드가 시즌이 지난 제품을 불태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이미지다. 저렴하게 판매하느니 태워 없애는 게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은 ‘백화점·면세점-해외명품대전-아웃렛-패밀리세일’로 이어지는 라이프사이클을 거친다. 이 중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는 명품대전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할인판매도 안 한다. 한 럭셔리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김모 씨는 “마지막 유통 단계인 직원 세일은 90% 전후의 가격에 판매되는데, 번호표를 뽑은 뒤 원하는 사이즈 제품을 건지는 수준이다. 여기서도 남은 물건은 소각장으로 간다”고 귀띔했다.

소각 물량도 많지 않다. 럭셔리 브랜드는 대부분 수제(手製)로 소량만 만들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버버리는 지난해에만 420억 원어치를 소각했는데 그중 3분의 1은 화장품 관련 제품이었다. 사업 부문을 재조정하면서 화장품이 상당수 포함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의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국내 상당수 대형 브랜드는 ‘백화점(백화점 세일)-행사-아웃렛-기부’ 등으로 이어지는 유통 과정을 거쳐 남은 제품들을 소각 처리한다. 물샐틈없는 재고 관리는 불가능한 걸까. 패션디자이너 안윤정 씨는 “유행을 타는 의류는 재고 관리가 가장 어려운 품목이다. 또 사이즈가 제각각이어서 선물하거나 기부하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환경 보호도 한 이유로 재고품을 소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윤리적 생산 경영은 최근 패션계의 화두다. 구찌, 아르마니, 스텔라매카트니 등은 ‘퍼 프리(Fur Free·모피를 사용하지 않음)’를 선언했다. 동물성 소재 대신 신소재를 연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버려진 물품을 활용한 ‘업 사이클링’(업그레이드+리사이클링)도 대안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재고로 소각될 옷을 모아 재생산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래코드’, 버려진 이불과 베개에서 추출한 오리털로 점퍼를 만드는 블랙야크의 ‘나우’ 등이 시장에 안착했다. 래코드를 총괄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 한경애 상무는 “래코드는 연간 소각 대상 재고의 10∼15%를 새로운 의류로 제작한다. 소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셈”이라고 자랑했다.

국내 의류업계에서도 재고를 불태우는 관행이 사라질 수 있을까. 주보림 이화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의류업계의 트렌드다. 국내 브랜드도 윤리적 생산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고를 기부하거나 저렴하게 팔면 짝퉁으로 둔갑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부작용이 속출한다. 소비문화가 성숙해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