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연속 KS 이끈 김태형 감독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야구계에서 종종 쓰는 말이다. 2015년 두산 지휘봉을 잡은 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을 잘 만났고, 때를 잘 만났을 뿐”이라며 모든 공을 주변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가 팀을 이끈 뒤 두산은 팀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 ‘두 얼굴의 사나이’ 등으로 불리는 그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며 팀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그는 상대를 제압하는 날카로운 시선(왼쪽 사진)과 사람 좋은 웃음(오른쪽 사진)을 동시에 갖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7일 한화와의 대전 방문경기에 앞서 만난 김태형 두산 감독(51)에게 우문(愚問)을 던졌다. “이런 결과는 운(運)입니까, 아니면 실력입니까.” 그의 입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현답(賢答)이 나왔다. “감독은 운이고, 선수는 실력입니다.”
2015년 김 감독 부임 후 두산은 왕조(王朝)로 불릴 정도로 막강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28일 현재 87승 48패를 기록 중인 두산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대 최다승(2016년 93승) 경신도 바라보고 있다. 곰의 탈을 쓴 여우, 일명 ‘곰탈여우’로 불리는 김 감독으로부터 더욱 강해진 두산의 비결을 들었다.
“평소에는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즐겁게 야구 하자는 게 내 주의다. 그렇지만 야구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 때 무섭다는 얘기를 듣는다.”
―부임 때부터 기본을 강조했다. 기본이란 어떤 것인가.
“그라운드에 선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 젊은 선수건, 40세 베테랑이건 야구장에서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야구는 개인 운동이 아니다. 팀이 이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떤 때에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하나.
“야구 못한 걸로는 절대 뭐라 하지 않는다. 타자가 삼진 먹고, 투수가 안타 맞는 것은 선수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야구가 안 되면 제일 힘들고 속상한 건 선수 자신이다. 다만 자신감 없이 스윙하거나, 우물쭈물 플레이하는 건 안 된다. 자기 야구 안 된다고 인상 쓰고 있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팀을 위해 파이팅을 해야 한다. 기본을 안 지키는 선수들에게는 한 번씩 메시지를 준다. 말로 할 때도 있고, 눈빛 레이저를 보낼 때도 있다(웃음).”
―메시지를 줄 때 직설하는 걸로 유명하다.
―두산이 진짜 강팀인 이유는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애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태형 감독. 대형견인 중앙아시아 셰퍼드 3마리를 키운다. 두산 제공
―감독 부임 후 만들려 했던 야구 색깔이 잘 스며든 것 같다.
“이젠 선수들이 어떤 행동을 감독이 싫어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더 잘 안다. 지난해 후반부터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걸 느꼈다. 만약 기본을 지키지 않은 플레이가 나오면 내가 뭐라고 말하기에 앞서 자기들끼리 먼저 지적하고, 파이팅을 하자고 외치더라. 요즘은 그래서 감독이 할 게 별로 없다.”
―기본을 지키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나.
―1위 팀 감독이지만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성적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하나는 골프이고, 또 하나는 개 키우기다. 경기 남양주 집에서는 작은 애완견을 키우고, 의정부의 농장에 대형견 3마리를 위탁해 키운다. 개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큰 덩치의 개들이 달려와 안기면 나도 모르게 힐링이 된다. 비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가서 만나는데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가지 못한다. 기다리고 있을 개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어느덧 4년 차 감독이 됐다. 어떤 리더가 되려 하나.
“야구엔 정답이 없다. 성적이 모든 걸 말해줄 뿐이다. 성적만 잘 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렇지 못할 때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감독 부임 때부터 선수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첫째도 기본, 둘째도 기본을 강조했다. 지금이야 성적이 잘 나니 그게 정답인 것 같지만 만약 성적이 안 난다면 구단은 당장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대전=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