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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려면…

입력 | 2018-09-29 17:10:00


백두산 천지를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한국인이 가기를 희망하는 북한 관광로를 먼저 둘러본 셈이다. 관광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어기지 않고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동아DB]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한미정상회담·한일정상회담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주역을 맡은 대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한반도운전자론’을 주장해온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경기침체로 하락하던 그의 지지율이 반등했다.

여론조사 회사 알앤써치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직후 조사한 9월 4주차(23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전주보다 6.6%포인트 오른 59.2%,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무려 8.3%포인트나 떨어진 34.3%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은 북한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만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냉정한 분석을 해보기로 하자.


○ 백두산 천지 방문 ‘깜짝쇼’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깜짝쇼’를 잘한다. 준비한 것임에도 밝히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밝혀 관심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도 각본대로 진행됐다고 한다. 북한은 남한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방북했기에 이번 방북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깜짝쇼 중 하나가 문 대통령의 노동당사 방문이었다. 그러나 백미는 따로 있었다. 문 대통령의 백두산 천지 방문이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중국 베이징과 선양 등에서 해오던 백두산 관광객 모집을 한동안 중단했다. 이를 알게 된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의 천지 방문이 기정사실화됐다고 판단했다. 북한은 백두산 관광객 모집을 중단한 사이 붉은색이던 케이블카 색깔을 고급스러운 은색으로 바꿔놓았다.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한 것도 훗날 큰 역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북한은 문 대통령에게 ‘보기 좋은’ 이벤트를 선사한 것이다.

북한과 안보 전문가들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 채택을 꼽는다. 나머지는 새롭지 않을뿐더러 옛것을 포장만 새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금년 내 동서해 철도와 도로를 잇는 착공식을 갖는다’는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착공식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유엔 회원국인 대한민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지켜야 한다. 북한은 해운이나 항공으로 핵과 미사일, 그리고 재래식 무기와 관련 장비 수출입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유엔은 북한의 해운과 항공에 집중적인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육운은 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있어서인지 제재하지 않았다.


○ 합의 대신 협의 많은 평양공동선언

유엔은 북한에 대한 관광을 금지하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과 유럽에서는 북한 관광객을 모집하는 여행사가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 관광객을 받겠다고 하고 우리가 동의하면 금강산 관광은 재개될 수 있다. 이처럼 남북 당국 간 합의만 하면 바로 되는 것이 금강산 관광인데, 남북은 협의해나가겠다고 했다.

개성공단은 통일부장관의 성명으로 중단됐다. 북한은 개성에 있는 우리 시설을 몰수했다. 하지만 개성공단도 양측이 뜻을 모으면 바로 가동할 수 있다. 환경보호와 방역·보건은 인도적 분야라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로 협력할 수 있는데 남북은 역시 협의하기로만 했다.

이렇게 북한 관광, 개성공단 운영 재개 등을 협의 사항으로 남겨둔 것은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개소 합의와 대비된다. 남북은 금강산 면회소를 조속히 복구해 빠른 시간 내에 상설면회소를 개소하기로 합의했다. 이산가족 면회는 인도적인 분야라 유엔이 제재하지 않기에 남북은 행동에 들어간다는 합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9월 평양공동선언은 들쑥날쑥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엔이 아닌 미국의 북한 제재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은 자국 법안으로 자국민의 북한 관광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법은 미국인에게만 적용된다.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북한 관광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가 허용하면 북한 관광을 할 수 있다.

중국 등이 관광을 허가하고 있는데도 북한 관광이 활성화하지 않는 이유로는 북한 관광을 허용한 나라에 대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거론된다. 그러나 미국은 관광을 포함해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할 수 없다. 이유는 법안이 없기 때문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 의회가 특정 국가를 지정해 법안을 만들어야 가동된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거론한 구두 약속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 세컨더리 보이콧 우려에 북한 관광 부진

과거 미국 의회는 쿠바와 이란을 상대로 세컨더리 보이콧 법안을 만든 바 있다. 이 때문에 두 나라와 거래한 나라들의 기업이 제재를 받았다.

미국 의회는 아직 북한을 상대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 법안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법을 어긴 타국 기업이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생크션(sanktion) 법안은 마련돼 있다. 비유하면 세컨더리 생크션은 일반법이고 세컨더리 보이콧은 특별법이다. 세컨더리 생크션과 미국이 만들지도 모르는 북한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법안을 의식해 다른 나라 기업들이 북한과 거래하기를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로 관광의 경우 한국 관광버스 회사들은 미국과 거래할 이유가 없으니, 평양 관광객을 마음대로 실어 나를 수 있다.

금강산 육로 관광 비용은 저렴한 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30만 원대까지 떨어졌기에 하루 300~400명이 몰렸다. 호텔 등 시설은 우리 측이 투자했으니 북한은 큰 투자 없이 돈을 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육로로 들어가 북한 항공기를 타고 당일로 백두산을 다녀오는 관광은 미국도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방북한 문 대통령에게 감격할 만한 ‘서프라이즈’를 제공해야 한다.

평양공동선언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는 우선 영구 폐기한다고 해놓았다. 동창리는 북한이 말하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해온 곳인데, 이 우주발사체는 미국을 공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동창리 영구 폐기는 결국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비핵화 조치 중 제일 먼저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협하는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을 없앤다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추가적으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조건부로 단계적 비핵화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전면적인 비핵화를 요구해온 문 정부 노선과 배치된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한 후 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8월 5일 미국 폭스TV에 출연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그때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1년 내 비핵화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9월 5일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이 (2년 이상 남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북·미관계를 개선하며 비핵화 실현을 원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비핵화 시기를 늦췄을 뿐만 아니라 조건을 달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평양을 다녀온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가기 전에 공동선언에 담지 못한 김정은과 구두로 합의한 사항이 있다며 이를 트럼프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서화한 것도 지킬 의무가 없는데 왜 구두 약속을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문 정부는 평양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는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이행합의서는 군사분계선 주변에서 정찰기와 무인기를 띄우는 것도 금지하고 있기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공동어로수역이라는 이름으로 북한과 합의한 내용보다 더 나간 것이 된다. 서해 공동어로수역은 서해 NLL 남북에서 남북 어선의 조업을 허용하자는 것이어서 사실상 NLL이 무력화된다.

서해 NLL에 대해 안보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NLL 남쪽으로 북한 어선이 내려오면 서울과 인천을 방어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이행합의서대로라면 북한 어선은 경기도 안산 앞바다까지 내려와 조업할 수 있다. 북한 어선으로 위장한 특수 선박이 있다면 천안함 사건 같은 불의의 일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측 수역에서 조업하는 북한 어선이 늘어나면 의심 선박을 검색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국방부와 해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 박근혜의 실패 반복하지 말아야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무역전쟁은 미국이 중국의 북한 지원을 벌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여타 나라들은 북한과 거래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문 정부가 상설면회소 설치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북한과 합의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추정된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이 원한다면 해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북한 육로 방문과 백두산 당일치기 관광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도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유지되려면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NLL이 무력화된 서해에서 북한이 도발하지 않아야 한다. 실물경기도 좋아야 한다. 이러한 것에서 ‘구멍’이 생긴다면 그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 참석은 대표적인 외교 실패로 거론된다. 당시 목함지뢰 사건 해결에 이어 시진핑·푸틴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른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세월호 사건으로 크게 추락해 있던 박 대통령 지지율이 54%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을 때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여러 차례 핫라인 통화를 시도했으나 외면당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그때까지는 거리를 두던 미국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미국 주선으로 일본과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위안부 합의를 했다. 그러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왔다. 그런 와중에 최순실 사건까지 터지자 그는 무너졌다. 이러한 박 전 대통령 사례는 문 대통령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57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