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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TNT 타임]코리아오픈 강타한 일본 배드민턴 박주봉 매직

입력 | 2018-09-29 21:23:00

-일본 3개 종목 결승 올라 역대 최고 성적
-남자복식, 여자 복식은 일 집안싸움. 금 은 확보
-대표팀 유니폼에 후원기업 5개 업체 로고 상한가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이끌고 코리아오픈에 출전한 박주봉 감독.


“한국이 (결승에) 한 종목이라도 올라가야 할 텐데….”

코트를 지켜보던 그의 표정에는 걱정스러움이 흘렀다. 29일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에 29명의 선수를 비롯한 대규모 일본 선수단을 이끌고 출전한 박주봉 감독(54)이었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에서 한국인 지도자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박주봉 감독과 최상범 코치.


박 감독의 염원과 달리 이날 한국은 남자 복식, 여자 단식, 혼합 복식 준결승에서 연이어 패해 아무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이 대회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 대조를 이뤘다. 일본 배드민턴은 여자 복식에서 4개조가 모두 준결승에 올라 코리아오픈인지 저팬오픈인지 모를 정도였다. 이로써 일본은 여자복식에 걸린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석권했다. 일본은 남자복식에서도 2개조가 모두 결승에 올라 금메달과 은메달을 확보했다. 30일 열릴 이 종목 결승은 ‘집안싸움’이 됐다. 일본 여자 단식의 간판 오쿠하라 노조미는 4강전에서 일본의 야마쿠치 아카네를 2-1로 꺾고 결승 티켓을 차지했다.

국제무대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있는 박주봉 일본 대표팀 감독과 남녀 주요 선수.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일본은 이번 대회 5개 종목 가운데 3개 종목 결승에 올랐다. 이 중 2개 종목은 일본 선수끼리 우승을 다툰다.

이같은 성적표는 일본이 역대 이 대회에서 거둔 최고 기록이다. 1991년 시작된 코리아오픈에서 일본은 2개 종목 이상에서 결승 진출자를 배출한 적이 없다.

최상의 결과를 맺은 중심에는 역시 2004년부터 15년째 일본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박주봉 감독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금메달을 딴 박주봉 감독과 당시 동료 김문수.

박 감독은 코리아오픈이 출범한 1991년 한국 대표로 출전해 남자복식과 혼합복식 정상에 올라 2관왕에 등극했다. 원년 챔피언으로 이 대회와 각별을 인연을 보인 박 감독은 현역 시절 ‘셔틀콕 대통령’으로 이름을 날렸다.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남자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주요 국제대회 우승을 휩쓴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은퇴해 세계적인 지도자로 변신했다.

장기 침체를 겪던 일본 배드민턴은 박 감독을 중심으로 어느덧 세계 최강으로 떠올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일본 셔틀콕은 다카하시 아야카와 마쓰토모 미사키가 여자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오쿠하라 노조미는 단식 종목에서 첫 메달(동)을 땄다. 반면 당시 한국은 역대 최악인 동메달 1개에 머물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카퍼레이드에 참가한 박주봉 감독.

올 5월 일본은 세계여자단체선수권(우버컵)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일본은 여자 단체전에서 대회 6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중국을 무너뜨리고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 이후 48년 만에 이 종목 정상에 섰다.

당시 박주봉 감독은 “일본팀을 맡은 뒤 아시아경기 금메달은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 2년 뒤 도쿄 올림픽 준비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이용대와 포즈를 취한 박주봉 감독

이번 대회 출전한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유니폼에는 5개 일본 기업의 로고가 붙어있다. 일본 대표팀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면서 2020년 자국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기대감이 높아져 후원이 몰려들고 있다. 일본 대표팀이 유럽 대회에 나갈 때는 영양사와 식사를 책임질 조리사까지 대동할 정도로 차별화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는 박주봉 감독

2004년 부임한 박 감독은 훈련 환경 개선, 코치 보강, 전폭적인 권한 위임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그가 처음 팀을 맡았을 때만 해도 일본올림픽위원회에서 급여가 나오는 지도자는 박 감독뿐이었다. 나머지 코치들은 실업팀에서 돈을 모아 월급을 챙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수한 코치진을 꾸리기 힘들었고, 대표팀에 대한 실업팀의 입김이 강했다. 하지만 박 감독의 건의로 4명의 종목별 코치와 2명의 상비군 코치가 완전 월급제로 일하게 돼 외풍 차단과 함께 집중적인 대표팀 지도가 가능해졌다. 박 감독은 “내 주관과 철학대로 대표팀을 끌고 갈 수 있도록 일본협회가 밀어주고 있다. 내가 1년 스케줄을 짜면 거기에 맞춰 예산을 배정할 정도다.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통역 없이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힌 그는 오키나와 백사장을 뛰게 하는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유망주 발굴을 위해 일본 중고 대회까지 참관했다.

일본 배드민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만든 박주봉 감독(가운데)과 여자 복식 다카하시 아야카(왼쪽)와 마쓰토모 미사키.

박 감독은 선수 시절 일본 배드민턴의 도움으로 실력을 키웠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 감독의 아버지는 일본 잡지를 번역해 박 감독에게 건네줬다. 박 감독은 고교 시절 일본인 코치의 서울 강습회를 통해 선진 기술에 눈을 떴다.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은 박 감독이 이젠 일본에서 신(神)을 뜻하는 ‘가미사마’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 배드민턴을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그래도 박 감독은 국내 배드민턴 선후배를 의식해 말을 아꼈다. “한국 배드민턴은 그동안 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아야 한다. 주니어 때부터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박 감독과 이야기를 마친 뒤 옆에 있던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배드민턴부 선수가 기자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 한국 사람이에요? 근데 왜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또래 보다 키가 무척 큰 이 셔틀콕 꿈나무가 성인이 될 때쯤 박주봉 감독은 뭘하고 있을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