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 18집 ‘이집트 스테이션’ 에미넘 제치고 앨범차트 정상에
비틀스 출신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폴 매카트니가 새 앨범 ‘Egypt Station’을 녹음하는 모습. 신작을 통해 매카트니는 다시 한번 특유의 재기발랄한 곡 구성력과 멜로디 감각을 보여줬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노인은 될 수 있지만 노장(老將)이 되긴 힘들다. 거장이라도 노령에 직접 전장을 휘젓기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검조차 뽑지 못하기 쉽다.
폴 매카트니(76)가 노장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매카트니는 최근 5년 만에 낸 정규앨범인 솔로 18집 ‘이집트 스테이션(Egypt Station·사진)’으로 래퍼 에미넘을 꺾고 최근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이번 주에 8위로 내려왔지만 노장에 대한 찬사는 계속된다. 김경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제는 어떤 의무감도, 아쉬울 것도 없는 입장의 천재가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서 만든 음악”이라며 “곱씹어 들을수록 매력이 발견되는 에너지가 강한 음반”이라고 평했다. 박현준 경인방송 PD 겸 DJ는 “위대한 팝스타의 열정이 신세대적 감각과 공존하는 올해 가장 신선한 앨범”이라고 말했다.
이 앨범은 ‘이집트 역’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음반이다. 42초짜리 서곡 ‘Opening Station’에서 매카트니는 사람들이 오가는 소음으로 가득한 역의 정경을 청각적으로 스케치해 제시한다. 앨범 말미의 짧은 연주곡 ‘Station II’가 수미쌍관을 이룬다. 매카트니는 “하나의 역에서 출발해 각각의 곡이 서로 다른 역에서 만들어진 듯 구성했다”고 했다.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딱히 이집트란 나라에 의미를 두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카트니는 “이집트 역이라는 말이 좋았다”고 했다.
역과 여행을 주요 소재로 삼은 만큼, 미묘하게 숨긴 월드뮤직의 이국적 색채를 발견하는 잔재미는 있다. 매카트니의 2005년 곡 ‘Jenny Wren’에서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 ‘두둑’을 연주한 페드로 유스타치가 이번엔 세 곡에 참여했다. 감성적인 신곡 ‘Hand in Hand’에 등장하는 인도식 대나무 플루트인 ‘반수리’의 쓸쓸한 음색이 깊다. ‘Back in Brazil’은 아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녹음했다. 이국적인 음계가 이채롭다.
치밀한 구성과 편곡에도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여전히 음악의 기본인 멜로디다. ‘Do It Now’ ‘People Want Peace’ ‘Hand in Hand’ 등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아름답고 따뜻한 선율들. 이대화 평론가는 “팝의 고전적 아름다움이 지닌 매력을 매카트니가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집트 역은 대중음악을 혁신했던 팔순을 앞둔 노장의 또 다른 출발점인 셈이다.
한편, 올해 기대된 3년 만의 매카트니 내한은 어렵게 됐다. 공연 관계자는 본보에 “11월 일본 공연에 맞춰 조율해봤지만 일정 문제로 매카트니의 이번 내한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