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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의 날飛]대통령전용기, 너무 크면 안 된다?… 비행기 ‘체급’의 비밀

입력 | 2018-10-01 17:48:00


문재인 대통령이 순방길을 떠날 때마다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수행단이 어떻게 꾸려지더라도 빠지는 법이 없는 존재. 순방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운명공동체. 바로 ‘공군 1호기’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입니다. 9월 ‘남북정상회담 평양’을 위해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중계된 공군 1호기 순안공항 착륙 장면은 극적인 정상회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씬 스틸러’였습니다.

지난달 18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평양’ 당시 문재인 대통령 영접 행사를 위해 분열해 있는 북한 조선인민군 뒤로 착륙하는 대한민국 공군 1호기. 평양=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대한항공에서 2010년부터 임차해 지금까지 쓰고 있는 공군 1호기는 보잉社에서 만든 747-400 기종입니다. 2001년 생산돼 같은 해 9월 28일에 대한항공에 인도됐습니다. 지난 금요일 생일을 맞았고, 이제 만 17살을 꽉 채운 셈입니다. 비행기 나이로 보면 고령이 됐습니다. 보통 비행기의 사용 연한을 20년 전후로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비롯한 민간 항공사에서 747-400을 점차 퇴역시키는 추세입니다. 이런 추세에 따라 국방부에서도 공군 1호기를 새 비행기로 도입하자고 청와대에 건의했습니다.

보잉에서 만든 747 제트기 중 최신기종인 747-8 여객기(747-8i) 자료: 보잉



국방부가 건의한 새 공군 1호기 후보는 747-8입니다. 모양이 비슷한 747 기종이지만 우리나라 항공사에 도입된 지 몇 년 안 된 최신형입니다. 더 크고 더 많이 싣고 더 적은 연료를 쓰면서 더 멀리 날 수 있다고 보잉은 광고했습니다.

●“너무 큰 비행기는 안 된다”?

그런데 일부 항공업계 종사자나 항공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잉 747-8은 대통령 전용기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견이 아닌 항공실무에 따른 의견입니다. 이유는 바로 이 비행기가 ‘너무 큰’ 비행기이기 때문입니다.

747-400과 747-8의 크기 비교. 새 기종이 옛 기종보다 날개폭(Wing Span)이 3.5m 더 넓습니다.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격투기 스포츠처럼 비행기도 ‘체급’이 메겨집니다. 가장 작은 비행기가 A등급이고, B C D로 갈수록 크기가 커집니다. 747-8은 F등급을 받았습니다. 비행기의 2층 버스인 A380과 함께 현존 여객기 중 유이(唯二)한 F등급 비행기입니다. 등급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조건 중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주날개 양끝 폭(Wing Span·날개폭)인데, 747-8은 이 폭이 68.4m로 F등급 기준인 ‘65m 이상’을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공군 1호기로 쓰이는 747-400은 64.9m로 아슬아슬하게 E등급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항공기 등급을 분류하는 기준. 현재 전용기인 747-400은 E등급이고, 도입을 검토중인 747-8은 F등급으로 분류됩니다. 자료: 한국공항공사 페이스북



●너무 크면 왜 안 되나

F등급 비행기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는 이 비행기들이 내릴 수 있는 공항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항도 항공기처럼 시설에 따라 등급이 설정되어 있고, 내릴 수 있는 비행기에 제한이 있습니다. 747-8을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이 비행기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항은 현재까지는 인천국제공항 뿐입니다.

올해 새로 개장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과 탑승교에 주기된 747-8 비행기(화살표).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에서 민간에 개방된 공항 중 유일하게 747-8을 제한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공항입니다. 동아일보DB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항공사고를 막기 위해 F등급 비행기를 공항에서 운용하려면 여러 가지 복잡한 조건들을 만족해야 합니다. 먼저 활주로 폭이 ‘원칙상’ 최소 60m는 되어야 하고, 그 활주로 양쪽으로도 7.5m씩 총 15m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항공기가 게이트에서 활주로 등으로 움직일 때 쓰는 길인 ‘유도로’는 폭 25m 이상, 그 양쪽으로 여유 공간이 총 35m 이상 필요합니다. 활주로와 가장 가까운 평행 유도로는 최소한 190m 떨어져 있어야 하고, 유도로와 유도로 사이에도 97.5m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주기장에 멈춰 있는 다른 항공기와 움직이는 F등급 항공기 사이에는 최소한 57.5m 간격을 분리시킬 수 있어야 F등급 항공기 운항이 가능합니다. 복잡한 내용 중 핵심만 그림으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F등급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는 공항 기준. 원칙상 이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항공기가 활주로나 유도로 위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자료: 보잉



이런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보니 우선 국내에서도 747-8 기종이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은 딱 네 개 밖에 없습니다. 인천, 김포, 청주, 제주입니다. 그나마도 이 중에 747-8이 다른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탑승교 주기장(게이트)에도 들어갈 수 있는 공항은 인천뿐입니다. 다른 공항은 모두 F등급 비행기가 이동할 수 있는 유도로를 따로 정해놓고, 비행기를 주기하는 장소도 공항 내 1, 2곳으로 제한해 놓았습니다. 공항청사 건물과는 멀리 떨어진 곳들입니다.

김포공항에서 747-8이나 A380이 움직일 수 있는 길(파란색). 비행기를 주기할 수 있는 공간 역시 화물청사 앞에 딱 두 군데 뿐입니다. 자료: Jeppesen, Navigraph.



물론 국내 순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출국 때마다 사용하는 서울공항은 군사공항으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지만, 지금 규격이 맞지 않다면 앞으로 어떻게든 전용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테니까요. 항공편으로 지방 순방 일정을 소화할 때는 문 대통령이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처럼 ‘공군 2호기’를 타는 방법도 있고 전용헬기를 탈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을 방문할 때 이용한 공군2호기(위)와 대통령 전용 헬기(아래). 공군2호기는 737-300 기종으로 1985년부터 정부가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 헬기는 시콜스키社의 S-92를 VIP수송용으로 개조한 VH-92.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해외 순방 때는 이런 우려가 실제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든 국가가 우리나라처럼 국빈 전용 공항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7월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우리 대통령 전용기는 창이공항의 일반 탑승구에 주기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을 때 창이 공항 게이트에 주기된 공군1호기. 사진=청와대 제공·동아일보DB



물론 대통령이 순방하는 국가의 수도에 있는 공항들은 대부분 몇 가지 제한사항이 있기는 해도 747-8 기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항공교통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방문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일부 항공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빈도는 적지만 아프리카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7월 이낙연 총리가 공군 1호기로 순방했던 중동·아프리카 국가인 케냐, 탄자니아, 오만 3개국 공항 중 747-8이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은 오만의 수도에 있는 ‘무스카트 국제공항’ 뿐입니다.

올해 7월 중동·아프리카 순방 당시 케냐 공항에 내린 이낙연 국무총리 뒤로 보이는 공군1호기. 이 공항은 현재 747-8 기종이 착륙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747-8!

대통령 전용기를 새로 도입하게 되면 정부에서 이런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제한적인 환경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747-8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 중에는 이런 변화하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차피 전용기는 단기간에 들여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활용도 30년을 바라보는 장기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에어포스 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대통령 전용기 VC-25A 역시 1990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했고 새 전용기가 도입되는 2024년까지 약 35년 간 사용할 예정입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대통령전용기로 쓰이고 있는 미국 공군 소속 VC-25A. 747-200 기종을 기반으로 만든 VIP 수송기입니다. 대통령이 탑승했을 때만 ‘에어포스원’ 호출부호가 붙고, 평소에는 SAM 28000, SAM 29000으로 불립니다. 동아일보DB



전용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도입하고, 운용하는 동안 747-8을 운용할 수 있는 공항은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실제로 이낙연 총리가 7월 방문했던 케냐 나이로비의 항공관문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은 현재는 747-8이 착륙할 수 없지만 지난해인 2017년부터 이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만들기 위해 활주로를 추가하는 등의 확장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문했던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 전경. 현재는 747-8 기종이 내릴 수 없지만 현재 확장 공사를 진행중입니다. 자료: 케냐항공청



항공기를 만든 보잉사의 로비력도 이 항공기 도입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크기 비교 그림에서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747-8은 747-400과 비교해 날개폭이 딱 3.5m 길 뿐입니다. 바퀴 폭도 10cm 차이가 나긴 하지만 별 게 아닙니다. 겨우 이 정도 차이 가지고 F등급 항공기 운용 조건을 맞추는 건 보잉 입장에서도 좀 억울했겠지요. 그래서 보잉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연방항공청(FAA)을 열심히 설득했고, E등급 비행기를 운용하는 공항 활주로(폭 45m)에도 747-8이 착륙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기사 윗부분에 활주로 조건을 설명드리면서 ‘원칙상’이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만 이런 착륙 규정은 아직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합니다.

보잉이 F등급인 747-8 기종을 E등급 공항에서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고 항공당국을 설득했다는 소식을 전한 ‘인터네셔널 에어포트리뷰’ 기사.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통령 순방 환경에서 전용기는 되도록 커야 합니다. 전용기 두 대에 관계자들을 나눠 싣고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과 달리 우리나라는 비행기는 한 대 뿐인데 수행단 규모는 제법 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공중 집무실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도 참모와 경호원을 다 태우고, 경제사절단이나 취재 인력까지 모두 한 비행기에 태우려면 747급 비행기는 되어야 소화할 수 있습니다.

평양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참모들과 경제사절단이 탑승한 대통령전용기 내부 모습. 통상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할 때는 순방단 규모가 대규모로 꾸려지기 때문에 747급 대형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잠깐 얘기를 다른 방향으로 흘리겠습니다. 747-8의 날개폭이 길어지면서 F등급을 받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날개 모양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보잉社는 기존 비행기보다 더 효율이 좋은 날개를 만들기 위해 기존 747-400처럼 날개 끝을 살짝 꺾는 ‘윙렛’ 대신에 날개를 평평하게 펴고 뒤로 살짝 굽히는 ‘갈퀴형 날개끝(raked wingtip)’이라는 디자인을 만들어 적용했습니다. 장거리 노선을 탈 때 자주 볼 수 있는 777-300ER과 최신형 비행기 787 드림라이너 등에도 적용된 기술입니다.

747-400(위)과 747-8(아래)의 날개 끝 모양. 이 모양 차이 때문에 거의 비슷하게 생긴 두 비행기의 ‘체급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자료: 동아일보DB, 보잉



그런데 이런 모양은 날개 길이를 줄이는 데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중형 기종인 787은 큰 상관이 없는데, 대형 기종인 777의 개량형 777X를 만들고 있는 보잉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또 F등급 항공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보잉은 아예 날개 끝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 777X에 붙여버리기로 했습니다. 착륙하자마자 날개를 접으면서 지상이동 때 날개폭을 72m에서 65m 이하로 줄이고, E등급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전략입니다.

777 기종의 차세대 기종인 777X를 만들고 있는 보잉은 이 비행기가 747-8처럼 F등급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날개 끝을 접는 ‘폴딩 윙팁’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자료: 보잉



●가격은 얼마일까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비행기의 크기에 관련된 문제는 국방부와 청와대 등에서 이미 다 검토했을 겁니다. 사실 정부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다름 아닌 돈이겠죠. 지금처럼 항공사에서 빌려 쓸 때와 구매, 직접 리스 등의 가격을 다 비교하고, 현재의 경제 상황에 국민 여론까지 고려해야 하다 보니 비용이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일 겁니다.

2009년 대통령전용기 도입을 놓고 예산을 이유로 정치권이 공방을 벌였던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그럼 대체 747-8을 전용기로 들여오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여기서는 비행기를 새로 구입할 경우를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보잉에서 공개한 항공기 가격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반 항공사에 판매하는 여객형 747-8i 가격은 4억290만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는 4500억 원 정도 합니다. 현재 대통전용기로 쓰는 747-400의 최근 5년(2020년 4월까지) 임대비용은 1421억 원입니다. 3배가 조금 넘는 돈인데 15~20년만 운용하면 ‘남는 장사’로 보입니다.

보잉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항공기 기종별 가격. 747-8 여객기 기종을 4억290만 달러로 표기했습니다. 자료: 보잉



물론 이 가격으로 비행기를 사 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보잉사는 공개 가격이 “여러가지 선택사항에 대한 평균 판매 금액”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옵션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비용은 떨어질 수도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 장착해야 하는 여러 가지 안전, 보안 선택사항을 적용할 경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겁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 VC-25A에 장착된 다양한 부가기능(옵션). 747-200 기종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비행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DB



최근에 747-8을 대통령전용기로 들이기로 결정한 미국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싸서 안 사겠다”고 수 차례 협상 테이블을 엎은 끝에 가격을 깎고 깎아 백악관이 계약한 전용기 도입 가격은 39억 달러입니다. 우리 돈 4조3300억 원. 우리나라 올해 예산(429조 원) 중 1%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미국은 대통령 전용기를 항상 두 대씩 운용합니다. 그러니까 한 대 가격은 19억5000만 달러, 우리 돈 약 2조1650억 원 정도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전용기 임대비용과 비교하면 15배가 넘는 돈입니다. 단순 비교하면 75년이 넘게 운용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미국 백악관이 39억 달러(약 4조3300억 원)에 새 대통령전용기를 구입하기로 계약했다는 외신 보도.



미국이 주문한 대통령 전용기는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행기일 겁니다. 한 대 가격이면, 보잉이 공개한 ‘평균가격’ 기준으로 같은 비행기 네 대를 사고도 돈 조금만 더 보태면 한 대 더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옵션 가격’이 높습니다. 이것도 기존 ‘에어포스 원’에 있던 공중급유 기능은 빠져있는 가격입니다. 백악관이 구입하기로 한 대통령전용기는 일반 항공사 판매용으로 만들었다가 주문이 취소된 기체여서 공중급유 기능을 새로 집어넣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전용기 한 대를 살 가격이면 같은 기종 일반 여객기 4대를 사고도 돈이 남습니다. 그래픽=채한솔 인턴



물론 우리나라 전용기는 미국만큼 비싸게 들여오지는 않을 겁니다. 또 애당초 국방부와 청와대는 ‘구매’가 아니라 ‘정부 직접 임대’ 방식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항공사에서 빌려오지 말고 정부가 직접 빌리자는 겁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747-8 항공기를 운용하고 정비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민간 항공사, 정확히는 대한항공의 협력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겁니다. 여객기(10대)와 화물기(7대)를 합쳐 747-8을 17대 운용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루프트한자(여객형 18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47-8을 운용하는 항공사이고, 그만큼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직접 임대 방식은 이런 추가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속사정들이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2015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여객형 747-8i(HL7630) 기종. 이에 앞서 대한항공은 2012년 화물기인 747-8F도 처음 도입했습니다. 여객기와 화물기를 합해 747-8을 총 17대 운영하는 대한항공은 독일 루프트한자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은 747-8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과거 대통령이 장거리 해외 순방을 가기 위해 외국의 비행기를 빌려 타던 시절에서 소형기를 도입해 전용기로 쓰던 시절을 거쳐, 우리나라도 이제 초대형 비행기를 대통령 전용기로 도입하자는 의견이 당당하게 나올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국력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국내외 경제 상황과 국민 여론, 그리고 정치 역학 등을 이유로 대통령이 민항사 로고가 아닌 ‘대한민국’ 글자가 새겨진 대형 전용기를 타고 장거리 순방을 떠난 지는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운용하고 있는 전용기는 2020년 4월에 임대 기간이 끝납니다. 이제 1년 반 정도 남았습니다. 비행기 도입을 결정하기에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고민이 깊은 만큼, 현명한 결정을 내기를 기대합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인포그래픽=채한솔 디지털뉴스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