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정부는 집값이 급등한 곳을 ‘투기지역’으로 이름 붙이고 있다. 이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매우 부정적이다. 마치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투기세력일 것 같은 선입견을 준다. 집값 급등의 원인은 이 지역에 집을 갖고 있는 투기꾼 때문이며 이들을 몰아내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이름이다.
강남이 늘 강남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투기지역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이사한 사람들은 아마도 당시 투기지역 내 아파트가 노후했기 때문에 새 아파트나 쾌적한 환경을 찾아간 경우가 많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 공급이 늘면서 단기간에 수요가 더 급증하고 있다.
투기지역은 다른 곳과는 달리 벗어난 순간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워낙 대기수요가 많기 때문에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바로 다른 이들이 채운다. 당연히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 자리는 줄어든다. 다시 돌아오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투기지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투기꾼일까? 그렇지 않다. 강남에 사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부모 때부터 강남에 살고 있었거나 직장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사 온 사람들이 많다.
강남 집값 급등의 원인은 투기꾼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지역을 투기지역이라고 이름 붙인 순간 정부도 그렇고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조차 투기지역 집값 급등을 잡기 위해서는 투기꾼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대방과 씨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좁은 서울을 투기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쪼개면 정부와 이들 지역 주민 간, 또 서울 내 투기지역과 비투기지역 주민 간 소모적인 갈등만 불러일으키게 된다. 투기지역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자가 거주 비율이 현재보다 더 낮았지만 서로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던 듯싶다. 부동산 시장은 잡고 잡히는 투우 경기장이 아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