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에 전기료 빨간불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구입 비용이 2030년까지 약 9조 원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해 6월 폐쇄가 결정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동아일보DB
“미세한 가격 차로 경쟁하는 구조에서 전기료를 약간만 올려도 큰 영향을 준다.”(정유회사 관계자)
올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철강, 석유화학 업체와 심야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 관련 간담회를 열었을 때 업계 관계자들이 쏟아낸 발언들이다.
○ 원전 발전 비중 줄며 한전 적자 확대
이는 정부가 안전을 명분으로 원전 정비 기간을 늘리면서 원전이 쉬는 만큼 더 비싼 연료로 전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발전단가)은 킬로와트시(kWh)당 61.96원이었다. 반면 석탄의 발전단가는 89.45원,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단가는 93.11원으로 원전의 1.5배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75% 안팎이던 원전 가동률은 올해 상반기 평균 58.8%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은 30%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7%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석탄 비중은 52%에서 54%로 상승했고, LNG 비중은 8%에서 13%로 뛰었다.
한전은 1조204억 원의 영업적자를 낸 2011년 가정용 전기요금을 2% 인상했다. 산업용 요금은 같은 해 8월과 12월 각각 6.1%, 6.5% 올렸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당 전망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에 드는 비용이 30% 감소한다는 예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예측에는 발전소를 설치할 부지 마련 비용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은 입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한국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주변 학계, 업계 관계자 중에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는 정부 설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실 주최로 열린 ‘성급한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전기요금이 2030년까지 230% 인상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불리한 한국의 입지 조건 등을 고려한 전망이다. 지금 당장은 한전이 부담을 떠안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언제든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 산업용 전기료 올리면 철강-반도체 기업에 타격
이번 ‘현안 보고’ 자료에서 산업부는 “심야시간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연중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반도체, 정유, 석유화학, 섬유, 철강 등 업종의 전기요금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정 업종의 부담이 늘어나며 피해가 몰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국가는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가정용의 70% 수준 이하로 저렴하게 유지하는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며 “정부가 탈원전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정확히 밝히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