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공화국엔 미래가 없다]<2> 규제문턱 못넘는 바이오의료기기 바이오산업 옥죄는 ‘신의료기술평가’
올해 2월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브레인 스티뮬레이션(Brain Stimulation)’은 우울증 치료기기 ‘마인드(MINDD)’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마인드는 KAIST 석·박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이 2016년 개발한 제품이다. 이마에 기기를 두르면 미세전류가 뇌를 자극해 항우울제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 당시 논문은 마인드의 안전성에 관한 것으로 와이브레인이 하버드대와 함께 작성했다.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34)는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다”고 했다.
와이브레인은 마인드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까지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으로부터 162억 원을 투자받았다. 바이오 스타트업 중 최대 투자 유치다. 하지만 이 제품은 개발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병원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 외국선 호평, 한국선 규제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신의료기술평가에 도전했다가 탈락했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병원에서 치료용으로 쓰일 수 없다. 그 사이 유럽 의료기기 국제규격(CE MDD) 인증을 받는 등 외국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대표는 “탈락한 이유라도 알아야 할 텐데 그마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평가 탈락 사유는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와이브레인은 올 6월 두 번째 신청을 했다. 결과는 내년 2월에 나온다. 그때 통과가 되더라도 제품 연구 단계에서부턴 6년, 개발 완료 단계에서부터는 2년 4개월이 지난 뒤다. 와이브레인이 허가 절차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마인드 판매 계약을 맺었던 대리점 중 일부는 이미 계약을 취소했다.
현재 국내에서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4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이미 있는 기술인지를 따진다. 기존 기술이 아니면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평원이 건강보험 급여를 산정한다.
이 중 최대 난관이 신의료기술평가다. 보건복지부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2007년 도입했다. 바이오업계는 이전엔 심평원으로 일원화됐던 절차가 이중 규제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평가 기간과 방식도 문제다. 의사 변호사 등 20명으로 구성된 평가위가 280일간 임상논문을 분석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이 대표는 “새 기술을 평가하는데 기존 논문을 기초로 들여다보는 구조”라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통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 개선안 발표에도 기업들 한숨
신의료기술평가를 포기한 곳도 많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스타트업 뷰노는 5월 인공지능(AI) 관련 의료기기 업계 최초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손뼈 엑스레이 영상을 AI가 분석해 의사의 판독을 돕는다.
그러나 심평원은 ‘기존 기술’로 평가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단계에 가보지도 못했다. 김현준 뷰노 전략총괄이사(40)는 “식약처가 AI 기술 관련 가이드라인이 없어 이를 만드는 걸 2년간 기다렸다가 허가를 받았는데 이제는 기존 기술로 판정돼 국내에선 판로를 찾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염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