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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빼돌리고 용역보고서 베껴 낸 과기원 교수들

입력 | 2018-10-04 03:00:00

KAIST-UNIST 모럴 해저드 행태
연구비 유용 등 5년간 16건 징계… 대부분 경고-정직 솜방망이 처벌




울산과학기술원(UNIST) A 교수는 2012년 3월부터 5년간 학생 3명이 받아야 할 인건비 중 절반인 약 2469만 원을 ‘공동경비’ 명목으로 빼돌렸다. 이렇게 조성된 경비는 교수 개인 차량의 주유비와 주차권 구입비, 경조사비, 회식비 등으로 사용됐다. 이에 학교 측은 “4년 이상 학생 인건비를 부당하게 집행한 점은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비위행위”라고 지적하면서도 허위로 참여 연구원을 등록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을 참작해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KAIST 소속 B 교수는 2013년 정부 부처의 정책용역과제 2개를 맡게 됐다. 각각 다른 과제였지만 B 교수는 같은 보고서를 중복 제출했고 이 사실은 국정감사에서 지적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KAIST 징계심의위원회는 B 교수를 ‘견책’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결국 자신의 보고서를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자기 표절’을 한 B 교수는 경고만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국가예산으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각종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KAIST와 UNIST의 일부 교수들이 연구비 부당사용, 연구윤리 위반 등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행태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통해 입수한 KAIST와 UNIST 교수 징계 내용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구비 부당사용과 연구윤리 위반 등 ‘모럴 해저드’ 행위로 징계를 받은 건수가 KAIST 12건, UNIST 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비 부당사용’으로 징계에 넘겨진 사례가 가장 많았다. 학생 인건비 약 3400만 원을 빼돌린 KAIST C 교수는 정직 6개월, 연구 장비를 구입하겠다며 1억 원가량을 선결제하는 방식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예산을 부적정하게 집행한 UNIST D 교수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KAIST의 E 교수는 정부 과제를 수행하며 받은 연구원 인건비 900여만 원 가운데 일부를 직무 관련자에게 향응으로 제공해 6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다른 연구 과제를 중복으로 제출하거나 표절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윤리’를 훼손한 경우도 적발됐다. 정직 처분을 받은 UNIST F 교수는 8개 정부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존 보고서를 베껴 제출하고 연구 성과를 허위 보고했을 뿐 아니라 6700만 원 상당의 연구장비를 허위로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예산으로 개발한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해 사적 이익을 취득한 사례도 있었다. KAIST H 교수는 국가예산으로 개발한 기술을 자신이 1대 주주이자 사외이사로 재직한 회사에 제공해 회사 가치를 70배 가까이 상승시킨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노 의원은 “국립대 교원으로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됨에도 도덕 불감증이 만연하다”며 “학생 인건비 편취와 연구비 부당집행, 표절 등을 명백한 범죄행위로 보고 관용 없는 엄격한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