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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메르스 외국인 접촉자 찾는데만 열흘

입력 | 2018-10-04 03:00:00

방역 구멍 막을 제도 보완 시급




그리스인 A 씨(59)는 지난달 7일 오후 4시 51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튿날부터 A 씨를 찾기 위해 테러 용의자 수색을 방불케 하는 추적이 시작됐다. A 씨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 B 씨(61)와 같은 항공기를 타고 입국한 만큼 ‘일반 접촉자’로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가 입국신고서에 적은 전화번호는 먹통이었다. 체류 장소라던 호텔에선 하루만 묵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경찰과 주한 그리스대사관까지 나섰지만 당국은 끝내 A 씨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입국 9일 만인 16일 출국했다. 보건당국은 그가 출국한 다음 날에야 그의 출국 사실을 알고 접촉자 명단에서 제외했다.

A 씨처럼 입국 후 행방이 묘연한 외국인 접촉자들은 이번 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 중 하나다. 확진자 B 씨가 다행히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보이지 않아 기내에 감염자가 없었지만, 만약 바이러스에 감염된 접촉자가 ‘추적 불가’ 속에 도심을 활보했다면 2015년과 같은 메르스 대유행 사태가 재연될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3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행방 미확인 메르스 접촉자 명단’에 따르면 B 씨와 같은 항공기를 탄 승객 중 94명의 소재가 지난달 9일 오후 6시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메르스는 통상 감염 후 이틀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달 9일은 메르스 2차 전파를 막을 첫 번째 ‘골든타임’이었다. 그럼에도 이때까지 100명 가까운 접촉자의 행방을 알지 못한 것이다.

94명 중 한국인은 38명이었다. 이 중 24명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는 등의 이유로 보건당국의 전화를 받지 않다가 나중에 연락이 닿았다. 나머지 14명은 연락처를 제대로 적지 않았지만 보건소 담당자가 자택으로 찾아가 모두 소재를 파악했다.

문제는 23개국에서 온 외국인 56명이었다. 전화를 제때 받지 않은 2명을 제외한 54명은 모두 입국신고서에 연락처를 적지 않거나 잘못된 연락처를 적었다. 더욱이 이 중 18명은 체류 장소로 신고한 숙소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필리핀인 S 씨(24·여)는 체류하기로 한 호텔의 예약을 취소한 채 사라졌고, 모로코인 B 씨(21)는 표기한 호텔의 예약자 명단에 아예 없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을 찾기 위해 경찰과 함께 공항 도착 후 동선을 폐쇄회로(CC)TV로 일일이 추적해야 했다. CCTV 추적에 실패하면 각국 대사관을 통해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했다. 이렇게 외국인 접촉자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만 꼬박 열흘이 걸렸다. 그럼에도 A 씨 등 4명의 행방은 스스로 출국할 때까지 찾지 못했다.

다행히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외국인 접촉자의 소재 파악 문제는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채만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최소한 메르스가 유행하는 중동 지역에서 입국한 외국인만이라도 주소와 연락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