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에게 최근 두 시즌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두 번의 우승 뒤 곧바로 받아든 성적은 두 번의 ‘꼴찌’였다. 수직하락을 경험한 OK저축은행 선수들에게 이제 더 이상 ‘뒤’는 없다. 사진제공|KOVO
2일 기자가 경기도 용인 포곡동 OK저축은행의 훈련장을 찾았을 때 선수들은 격렬하게 수비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세진 감독은 “어제 일본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엉망이었던 부분이 많아 벌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외박을 앞두고 선수들은 비명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코트에서 구르며 공을 받아 올렸다. 김요한은 “그래도 오늘 훈련은 평소보다 소프트한 편”이라고 했다.
2번의 우승과 2번의 꼴찌. OK저축은행의 롤러코스트 같은 성적은 로버트랜디 시몬 이후 외국인선수 명단에 다 드러난다. 2016~2017시즌을 앞두고 지명했던 쿠바국적의 세페다가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면서 일이 꼬였다. 이후 마르코 보이치~모하메드~브람~마르코 페레이라 등이 왔다. 모두 실패했다.
이 뿐이 아니다. 창단 이후 바뀐 단장 부단장 등 프런트도 20명이 넘는다. 프런트가 너무 강해도 문제겠지만 OK저축은행은 정반대였다. 감독 김세진의 능력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댄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번에도 김세진 감독은 쿠바국적의 요스바니를 선택했다. 쿠바 대표팀에서 시몬과 함께 뛴 선수다. 김세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코트에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트라이아웃 때 유일하게 트레이닝 룸에서 몸을 풀며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석진욱 수석코치와 함께 봤다. 진지한 태도가 좋았다. 유럽의 A급 리그에서 뛰어본 적은 없지만 트라이아웃을 향한 열성이 마음에 들었다. 기꺼이 궂은일을 자처하며 도와주는 모습에서 최종선택이 나왔다.
“실력보다 인성과 융화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감독의 기대는 일단 충족했다. 요스바니는 새로운 동료, 환경에 잘 어울리고 있다. 2일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올만한 반복된 수비훈련 때도 군소리 없이 몸을 굴렸다.
최근 그의 경기를 지켜본 어느 심판은 “진짜 배구선수 같다. 배구를 알고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사전 선호조사에서 30위 안에도 들지 못했지만 현대캐피탈이 꽁꽁 숨겨놓은 카드였다. 이를 김세진 감독이 찾아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 사진제공|KOVO
● 새로운 기초공사가 필요한 OK저축은행
이번 시즌 팀은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리베로 정성현이 군에 입대했고 송희채는 FA선수로 팀을 떠났다. 외국인선수도 새로 뽑았다. 배구는 네트 위에서 플레이가 벌어지는 공중전이지만 네트 밑에서 공을 받아주지 못하면 공중전은 의미가 없다. 지상전인 수비와 리시브를 잘하는 팀은 흔들림이 없다. 새 기초공사가 필요했던 김세진 감독은 FA보상선수 부용찬과 조국기, 요스바니, 송명근이 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판단한다. 분명 송희채가 버틸 때와 비교한다면 리시브의 탄탄함이 떨어질 것이다.
김세진 감독의 장점은 이런 순간에 나오는 솔직함이다. “우리는 기본기가 떨어지는 팀이다. ‘어어’ 하다가 실점하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이 단점이 없어지지도 고쳐지지도 않는다. 약점을 숨기려고 웅크리지 말고 우리가 못하는 것, 범실을 인정하고 대신 잘하는 부분은 더 살려가겠다”고 했다. 단점의 보강이 아니라 장점의 극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 선수와 프런트가 마음을 맞춰야 기적은 찾아온다
김세진 감독은 기술보다 선수들의 생각에 더 신경을 쓴다. “약팀은 1~2라운드에 치고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반에 떨어진다. 선수들이 먼저 시즌을 포기하고 고개를 숙이면 그 팀은 끝난다. 그 때부터는 선수들이 본능적으로 몸을 사린다”고 했다.
감독은 요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2년 연속 꼴찌를 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남 핑계대지 말고 숨기거나 꼼수 부리지도 말고 건강한 배구를 하자”면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기는 데는 이유가 없지만 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창단 2년 만에 기적을 만들었다. 아직은 팀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신생팀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우승이었다. 너무 쉽게 왔던 행운이었기에 진정한 가치를 잘 몰랐다. 이후 그저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기대만 했다. 투자 없는 높은 기대치의 끝은 뻔했다. 그 이후 어두웠던 2년 동안 선수단과 프런트는 상호신뢰와 공동의 목표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실감했다. 이제 OK저축은행은 코트의 선수뿐만 아니라 프런트도 탄탄한 기초공사를 하려고 한다.
OK저축은행 이민규(가운데). 스포츠동아DB
● 이민규가 더 발 빠르게 뛰어다녀야 할 시즌
이번 시즌 키플레이어는 이민규다. 리시브의 약점으로 세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전보다는 들쭉날쭉한 리시브가 많을 것이다. 결국 이민규가 더 많이 뛰어다니면서 잘 연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속공보다는 양쪽 날개공격에서 장점을 잘 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감독은 말했다.
이민규는 KOVO컵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했다. 장기였던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사라졌다. 이유가 있었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몸이 회복할 시간도 없이 시즌을 반복하고 대표팀에 차출되다보니 오른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아직도 정상은 아니다. 뛸 때도 불편하지만 참고 버티면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민규는 “사이드로 길게 뽑아주는 공을 좋아한다. 동료들이 잘 받아줘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년 3월에 곽명우가 군에서 돌아오면 이민규의 부담은 줄어든다. 그는 훈련소에서 감독에게 편지를 보냈다.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감사의 편지를 쓰는 그 순간에 곽명우는 감독을 떠올렸다.
“그동안에 감사하고 다시 팀에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편지는 지금도 감독실 책상 위에 있다.
중앙은 김요한과 박원빈 등이 지킨다. 한때 한국배구의 미래를 책임질 기둥으로 기대가 컸던 김요한이지만 아쉬움이 많다.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승반지도 하나 없다. 이제는 새로운 포지션에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도 서투르고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지키기 위한 헌신의 플레이를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