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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노벨평화상, 올해는…

입력 | 2018-10-05 03:00:00

5일 발표 앞두고 ‘흑역사’ 재조명
1991년 상 받은 아웅산 수지, 로힝야족 인종청소 책임론 시끌
키신저, 베트남 폭격 설계자 논란… 아라파트는 테러리스트 지적도
오바마, 수상뒤 핵감축 진전 못시켜… 미투-난민구호 단체 올 유력 후보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은 시기상조”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발표(한국 시간 5일 오후 6시)를 앞두고 노벨 평화상의 ‘흑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1991년 수상자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73)이 최근 자국 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자행된 ‘인종청소’에 책임이 있다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수상이 박탈되지 않으면서 노벨 평화상의 한계점이 드러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라르스 헤이켄스텐 노벨재단 사무총장은 2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노벨상을 받은 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며 “상을 박탈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헤이켄스텐 총장의 말처럼 노벨 평화상이 논란에 휩싸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분히 추상적인 ‘평화’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관점이 충돌하는 데다 이로 인해 수상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때마다 노벨 평화상은 ‘무용론’에 휩싸이곤 했다.

○ ‘전범(戰犯) 수상’부터 ‘언행 불일치’까지

1973년 수상자인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이해 1월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은 공로로 북베트남 지도자였던 레둑토와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하지만 키신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겨냥한 폭격의 사실상 ‘설계자’였다는 점 때문에 ‘전범이 평화상을 수상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레둑토는 공동 수상을 거부했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르웨이노벨위원회 위원 중 두 명은 사표를 냈다. 수상자가 평화를 이룬 ‘방법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대표적인 경우다.

1994년 ‘오슬로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교장관과 함께 평화상을 받았던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도 비슷한 사례다. 그를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위해 싸운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폭력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 ‘테러리스트’라는 시각이 강했던 것이다. 당시에도 노르웨이노벨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 아라파트의 수상에 반대하며 사표를 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 9개월 만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핵 없는 세상’이란 비전을 세상에 던졌다는 것이 주요 수상 이유였으나 8년 임기 동안 핵 감축과 관련해 획기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말만 앞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 본인도 “나도 솔직히 내가 왜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질 정도다.

○ ‘미투 운동’ 노벨 평화상도 휩쓸까

리처드 에번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에 “노벨 평화상은 처음엔 국제조약을 체결하는 협상가들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인류 진보와 인권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변신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유력한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들도 에번스 교수의 분석에 부합하는 인물이나 단체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연구소(PRIO)는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난민을 구조하는 데 기여한 국경없는 의사회와 인도주의 단체 SOS메디테라네, 2006년 권력형 성폭력 폭로 캠페인에 처음으로 ‘미투’라는 표현을 쓴 캠페인 주창자 타라나 버크, 기아 문제 해결에 힘써온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유력 수상 후보로 꼽았다.

온라인 베팅업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가운데 현지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수상을 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고 말한다. 댄 스미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장은 3일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에 “한반도 대화 국면은 올해 가장 드라마틱했던 장면이었다”면서도 “올해 수상 사유가 되기엔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전채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