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개시연령 단계적 늦춰, “개혁 안하면 치명적 결과 초래” 지지율 하락에도 법안 서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상트페테부르크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거센 국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는 연금 개혁안에 결국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3일 연금 개혁안이 압도적인 찬성(찬성 149명, 반대 5명)으로 의회 상원을 통과하자 곧바로 서명했다. 이 개혁안에 따라 러시아는 내년부터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남성은 60세에서 65세, 여성은 55세에서 60세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진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내린 결단이다. 올해 6월 러시아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왔다. 기대수명이 66세인 러시아의 남성들은 “(연금을 65세부터 받으라는 건) 죽기 전까지 일만 하라는 이야기냐”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연금 개혁안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끌어내렸다. 올해 3월 4선에 성공한 뒤로 80%대를 유지하던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금 개혁안 발표 이후 60%대로 크게 떨어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러시아 국민의 약 90%가 연금 개혁에 반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2005년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것에 반대하는 연설 동영상이 등장해 말 바꾸기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연금 개혁 추진에 대한 반발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미르주와 극동 하바롭스크주 주지사 선거에서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들이 참패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3일 크렘린궁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을 우려하고 있다는 보도를 부인하며 “대통령은 오직 국민만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연금 수급 개시 나이를 63세로 8년 늦추려 했던 당초 계획에서 60세로 5년만 늦춘 푸틴 대통령은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의 경우 일찍 은퇴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연금 수급 연령이 가까워진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고용을 거부하는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보완책도 제시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