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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필적]〈27〉박수근의 단순미

입력 | 2018-10-05 03:00:00



대한민국 미술시장에서 최고 작품가의 주인공이었던 박수근은 그 자리를 김환기에게 내 주었지만 아직도 작품의 호당 가격은 단연 최고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국민화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는 노상과 장터,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 인정이 서린 대한민국의 정경을 담아냈고 스스로도 “나는 그들이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고 말했다. 소재뿐 아니라 단순화된 선과 구도, 회백색의 화강석과 같은 질감이 그를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우뚝 서게 했을 것이다. 단순미는 한민족의 미감 중 핵심이고 화강석은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한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돌이다.

박수근이 ‘국민화가’가 된 이유는 그의 글씨에서 찾을 수 있다. 박수근이 김복순에게 청혼한 러브레터의 글씨에서도 알 수 있지만 작품 서명을 보면 그는 한민족 고유의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한국적인 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박수근의 글씨는 한글, 영문, 숫자 모두 방향이나 기초선, 크기에 변화가 많고 살아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대 한민족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신라의 ‘영일냉수리신라비’(443년 또는 503년)와 많이 닮았다. 이 비석은 가로와 세로 줄을 맞추지 않고 새겨서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하며 즉흥적이고 소박한 느낌이 강하며 곡선보다는 직선이 좀 더 많고 필획이 가늘며 선이 단순명료하다.

박수근이나 ‘영일냉수리신라비’의 글씨는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부정형으로 이는 한국 미술의 핵심이다. 고유섭이 말하는 ‘무기교의 기교’ ‘질박한 맛’ ‘순진한 맛’ ‘무관심성’ ‘구수한 큰 맛’과 같은 맥락이고, ‘자연미’ ‘무작위’ ‘해학’ 등과도 관련이 있다. 최순우도 소박한 아름다움과 기교를 초월한 방심의 아름다움을 한국적인 미감이라고 하였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