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이세돌 바둑 대국 이틀 뒤 정부는 인공지능 산업전략 발표 “5년간 1조 투자계획” 어디 갔나 기업도, 정부도 단기성과에 급급… 지속 없이는 노벨상도 어림없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슬픈 예감이 든 것은 이때였다. 얼마 안 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연구조직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리더가 바뀌고 경기가 다시 돌아오는 기미가 보이자, 대대적인 신사업 발굴 계획과 최고급 연구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홍보성 기사로 떴다.
그 이후 전개된 사정은 보나 마나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모았지만, 알고 보니 이전에 하다가 중단된 것들이었다. 새롭게 꾸린 팀은 서로 손발을 맞추는 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대부분의 시간과 돈이 이전 수준을 겨우 회복하는 데 들어갔다. 이런 저간의 소문을 알고 있는 우수 인재들은 그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아예 손사래를 쳤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혁신을 시도할 때 변덕스러운 10억 원보다 꾸준한 5억 원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미 몸으로 아는 상식이다. 왠지 운동하고 싶은 날 10시간 동안 단내가 나도록 운동하고 한 주일 내도록 코빼기도 안 비치는 사람보다, 30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기술혁신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많이 투자한다고 역량이 쌓이는 게 아니다. 꾸준히 지속하는 가운데, 경험이 재해석되고 연결되면서, 고유한 역량으로 쌓이게 된다. 이것이 지속으로부터 얻는 숙성의 힘이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와 같은 단기주의가 넘친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 대국을 가지면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놀랍게도 바로 이틀 뒤인 3월 17일 정부는 한국형 알파고 개발을 목표로 내걸고 인공지능산업 발전을 위한 국가적 전략을 발표했다. 5년간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신문기사의 머리글로 달렸다. 당시 국제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서도 알파고에 대한 한국의 급조된 대응을 우려하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과 6개월 남짓 후인 10월에 인공지능연구소가 실제로 설립되었다. 흔히 보던 속전속결이다.
안타깝게도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굵은 글씨로 씌어있던 1조 원과 인공지능연구소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로운 개념을 접하고 나서 긴급대책을 내어놓고, 초단기로 자원을 몰아 투자해서 유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놓지만, 결국 지속하지 않는 습관은 데자뷔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속성이 중요하기로는 기초과학만 한 분야가 없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도 시대를 바꾸는 연구를 한 비결 중 하나로 지속(Continuation)을 꼽았을 정도다. 지속이 없이는 노벨상은 언감생심이다.
한국 사회도 어느덧 선진국의 외형을 갖추었다. 이제 내면도 알찬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단기간에 집중투자하고 지속하지 않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작더라도 꾸준히 투자하고 쌓아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묵은 별빛의 씨앗을 꾸준히 키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