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0 건강 지킴이] <1> 고혈압 체크리스트 및 예방법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왼쪽)가 고혈압 가족력이 있는 40대 이성철(가명) 씨의 혈압을 재고 있다. 윤 교수는 “적절한 운동 외에도 음주를 줄이고 고열량 식품을 삼가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 혈압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이성철(가명·43) 씨는 자나 깨나 고혈압 걱정이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외할머니도 뇌중풍(뇌졸중)을 앓으셨고, 그게 직간접적 원인이 돼 고인이 되셨다. 뇌혈관 파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혈압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게다가 이 씨의 부친은 심근경색도 앓았다. 심근경색의 원인인 심장혈관 파열은 고혈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 씨는 “고혈압에 관한 한 나는 불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혈압 수치에 특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그때마다 체중, 혈압, 콜레스테롤 관련 수치를 기록해둔다. 2007∼2018년 데이터는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았다.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든 꺼내보기 위해서다. 이 씨가 이 데이터를 들고 고혈압 분야의 베스트닥터로 통하는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료협력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을 만났다.
○ 고혈압 데이터 축적해 놓아야
이 씨처럼 고혈압 가족력이 있는 중년들은 두렵다. 부모 모두가 고혈압이라면 그 자식이 고혈압 환자가 될 확률은 무려 50%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 씨는 휴대전화에 담긴 체중과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수시로 꺼내보며 스스로를 관리한다. 윤 교수는 “아주 좋은 건강습관이다. 데이터를 기록해놓고 수시로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혈압은 크게 수축기혈압과 이완기혈압으로 나뉜다. 각각 심장이 수축할 때와 이완할 때 혈관에 가하는 압력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수축기혈압이 120mmHg 미만, 이완기혈압이 80mmHg 미만이면 정상 범위로 본다. 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면 고혈압 전 단계로 규정한다. 수축기혈압이 140을 넘거나 이완기혈압이 90을 넘으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 씨는 2007년에는 고혈압 전 단계였지만 현재는 거의 정상에 가깝다. 게다가 한 번도 병원에서 고혈압 환자로 분류한 적도 없다. 따라서 안심해도 좋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엄격한 미국 기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심장학회는 수축기혈압이 130 이상이거나 이완기혈압이 80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기준을 따른다면 이 씨는 2007년에 이미 고혈압 환자로 분류된다. 2018년 현재 이 씨의 수축기/이완기 혈압은 120/80이다. 미국 기준에 따르면 이 씨는 여전히 고혈압 환자이다. 이 씨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그동안 내심 방심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미국 기준으로는 고혈압 환자가 된다니 지금보다 더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맥압-콜레스테롤 수치도 파악해야
이 경우 뇌중풍이나 심근경색의 위험도가 커진다. 윤 교수는 “말랑말랑했던 고무가 딱딱해지면 원래 상태로 돌려놓기가 쉽지 않다. 맥압도 마찬가지라서 50이 넘었다면 50대 이하로 떨어뜨리기 위해 혈압 관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씨의 경우 2007년 혈압은 135/80이었다가 2015년에 121/65로 낮아졌다. 일단 혈압 수치만 보면 2007년이 더 나쁘다. 하지만 맥압은 각각 55와 56으로 큰 차이가 없다. 혈관 탄력도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이 씨가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수축기혈압을 낮춤으로써 맥압을 40대 수준까지 내린 점은 칭찬받을 만하다. 이 씨는 “지금까지 건강검진표를 보면서도 맥압은 전혀 체크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고혈압-고지혈증 밀접한 관련 있어
이 기간에 체중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많이 탔다. 매일 1∼2시간 자전거를 탔다. 때로는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도 있었다. 운동할 때에는 스마트워치로 심장박동수를 체크해 분당 120회 내외를 유지했다. 윤 교수가 “좋은 운동 습관이었다. 이 정도면 다른 운동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다. 이 씨의 수축기혈압이 다시 80을 넘어섰다. 폭음이 원인이었다. 일반적으로 고혈압 전 단계라면 소주 반 병, 맥주 반 병, 와인 한 잔, 위스키 한 잔 이상만 마셔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 이 씨는 매주 1, 2회 술자리를 가지며 그때마다 소주 2병 정도를 마셨다. 게다가 고기, 알탕, 내장탕, 곱창과 같은 고열량 음식을 안주로 즐겼다. 그 결과 최근 체중은 74kg으로 늘었고, 혈압은 120/80으로 상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성지방이 2017년의 2배 이상으로 뛰었고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LDL)도 급증했다. 이대로라면 혈압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윤 교수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배가 나오고 내장 지방이 쌓이면 인슐린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 그 결과 고지혈증, 고혈압 등이 악화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운동만으로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모두 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윤 교수는 “이 씨의 경우 비교적 안정적으로 혈압을 관리하는 편이지만 식습관과 음주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악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그동안 조금은 안일했던 것 같다. 당장 절주부터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혈관 제 기능 못해 치명적 합병증 유발▼
고혈압에 관한 궁금증 ABC
윤영원 교수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짜게 먹는 식습관, 운동 부족, 음주, 흡연을 지목했다. 최근에는 젊은 환자들도 비만, 고지혈증으로 인해 일찍 고혈압이 발병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고혈압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가족력이 있거나 위험인자가 있다면 염분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이 밖에도 고혈압에 걸리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은 적잖다.
○ 고혈압을 조심해야 할 이유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기 쉽다. 지속적으로 높은 압력이 가해지면 혈관이 제 기능을 못 한다. 뇌혈관, 심장혈관, 신장, 눈 망막 질환 등을 유발한다. 고지혈증과 당뇨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 혈압이 높아질 때 나타나는 증상
고혈압 환자의 80∼90%는 아무런 신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10∼20%는 몸이 달아오르거나 목 뒤 통증, 혹은 등 뒤가 쑤시는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그날따라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
○ 식당 음식을 줄여라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대체로 짜다. 맛을 내기 위해 소금을 많이 쓰기 때문. 특히 짬뽕처럼 자극적인 음식에는 꽤 많은 양의 소금이 들어 있기 십상이다. 국물이 많은 음식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 술 마실 때 주의할 점
안주는 고단백이면서 열량이 적은 것이 좋다. 황태나 먹태, 두부 등이 추천 음식. 육회도 많은 양이 아니라면 안주로 권장할 만하다. 다만 안주가 좋다고 술을 많이 마시면 혈압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 수면 장애도 악영향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 상태가 지속되면서 혈압이 높아진다. 좋은 수면 습관을 들이려면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 컴퓨터나 TV를 꺼둬야 한다. 이들은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수면 분위기를 해친다.
○ 고혈압에 좋은 운동
혈압이 높을 때는 달리기, 수영, 자전거, 테니스 같은 유산소운동이 추천된다. 심장 박동 수가 천천히 올랐다가 떨어지게 40분 정도는 운동을 해야 한다. 혈당까지 높다면 유산소운동에다 근육운동을 같이 해서 당을 소비해줘야 한다.
○ 혈압을 수시로 측정하라
가정용 혈압계를 구비해 오전과 오후, 각각 일주일에 3회는 혈압을 측정하는 게 좋다. 스마트워치로 혈압을 측정하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병원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수은혈압계보다 자동혈압계가 대체로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다.
○ 약 복용은 의사와 상의
일반적으로 혈압 약을 복용하면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고혈압의 유형이나 중증도에 따라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증세가 호전돼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사례도 있다. 의사와의 상담과 지속적 관리가 핵심이다.
▼환자 입장서 역지사지 치료… 질병예방 생활습관 직접 실천▼
고혈압 베스트닥터 윤영원 강남세브란스 진료협력센터장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51)는 ‘역지사지’를 늘 생각한다. 환자의 처지에서 가장 적절한 치료를 했는지를 늘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다. 의사니까 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기계적인 처방’이 아니라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 만한 처방을 성심껏 찾아내 시행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는 또 의사는 환자에게 모범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혈압 전문 치료 의사로서 병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직접 실천하는 데 노력을 다한다.
윤 교수는 현재 이 병원 진료협력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여러 진료과로 나뉜 내과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이 통합내과의 초대 과장도 맡아 입원전담 전문의 제도와 통합 전공의 수련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그의 전문 분야는 고혈압을 비롯해 협심증, 심장동맥(관상동맥) 질환, 동맥경화 등이다. 대한임상노인의학회 이사와 대한고혈압학회 보험위원을 맡기도 했다. 대한심장학회, 중재시술학회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이 병원의 국제진료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주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했으며 현지로 국내 의료를 수출하는 일도 담당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