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내가 만난 名문장]여전히 슬픈 유산

입력 | 2018-10-08 03:00:00



“믿음 없는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려고 힘껏 산다. 때의 한 점 한 점을 핏방울처럼 진하게 산다…. 어떻게 하면 힘껏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캄캄했고, 피처럼 진한 시간은 어디 숨어 있는지 꼬리도 찾을 수 없을 뿐” ―최인훈 ‘광장’

김재수 영화감독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6·25전쟁으로 분단된 현실의 비극을 절절히 담았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북 두 사회를 오가며 이념의 갈등이 없는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그가 바라는 삶은 없고 이념은 사랑하는 여인마저 앗아갔다.

2009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으로 귀농했다. 그 뒤로 책을 들출 때마다 이 구절이 가슴을 먹먹히 때린다. 이념의 잔혹성을 보여주려는 최인훈 선생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1951년 2월 초 경남 거창군과 산청군 함양군 일대에서 국군은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벌였는데 말 그대로 ‘성을 견고히 지키며 들판을 말끔하게 비우는 것’이었다.

이 단어엔 잔혹함이 있다. 당시 국군은 북한군에게 양식은 물론이고 쉴 곳을 주지 않기 위해 성 밖의 가옥을 불태우고 철거했다. 성 밖 주민들의 죽음이 고려 대상이 아니듯이 지리산 자락에 숨은 공비를 색출하겠다는 명분으로 산청과 함양 일대에서 396명을, 거창에서 719명을 살해했다. 거창에서 만난 김 씨 아저씨는 “‘내가 죽기 전에 내 입으로 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릴 수 있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될 때까지 숨죽인 채 살았다고 했다.

최인훈 선생이 ‘광장’을 통해 남긴 말처럼 유족들은 ‘피처럼 진하게’ 살려고 해도 시국의 ‘캄캄’함 속에서 ‘믿음이 없는 마음’만 가졌을 것이다. 이념 앞에 가족을 잃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는 국가를 보며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는 심경이 응어리져 풀리지 않는다. 여전히 슬픈 유산으로 남겨진 이 ‘빈 들판’은 ‘광장’이 될 수는 없는 걸까.
 
김재수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