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일묵 스님, 제따와나 선원 춘천 옮겨 개원

선원 법당 내 불상 앞의 일묵 스님. 이 불상은 인도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초전법륜상을 모티브로 했다. 스님은 “부처님 법을 알면 알수록 깊이와 재미가 느껴진다”며 “부처님 법은 실제적으로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했다. 춘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일묵 스님(53)의 출가와 이후 행보는 세간의 관심사였다. 서울대 수학과 83학번인 그는 박사학위과정을 밟던 1996년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인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96∼97년 그를 포함한 서울대 졸업생과 재학생 10여 명이 세속의 성공을 버리고 잇달아 산문(山門)으로 향했다. 2003년 일묵, 종원, 명인 세 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KBS 다큐멘터리 ‘선객’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묵 스님은 2009년 서울 강남에 제따와나 선원을 개원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가 화두를 틀고 수행하는 간화선 중흥을 이끈 성철 스님의 손상좌이면서도 초기 불교의 명상 수행 전통을 따랐기 때문이다. 강원 춘천시에 14일 선원을 이전 개원하는 일묵 스님을 최근 만났다.
―출가 후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길을 가고 있다. 힘든 때도 몇 번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성장의 기회였다.”
“출가하면서 ‘서울대 출신 중에는 도인(道人)된 사람이 없다’는 말을 깨고 싶었다. 하하. 2003년 다큐멘터리 출연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그때 나를 포함해 주변의 허상과 세속적 욕심을 절실하게 느꼈다. 오만해져 ‘이게 진리다’라며 떠들고 다녔는데 참 어리석었다.”
“그런 듯하다. 저는 믿고 따르는 대신심(大信心)형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따지는 지혜형 수행자다. 그래서 화두 중심의 수행보다는 분석적인 초기 불교가 맞았다.”
―성철 스님의 손상좌라 조계종 내에서 파장이 컸다.
“성철 스님이 최상의 공부법을 이미 내놓았는데 ‘네가 성철 스님보다 낫냐’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 문중을 포함한 종단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초기 불교와 관련한 경전이 번역되면서 이해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동안거와 하안거 해제 뒤 1년에 두 번씩 1박 2일을 지내며 밀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주변의 시선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출가 뒤 만나면 아무래도 벽이 있다. 세속에서부터 정서적 공감대가 있어 편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군 문제 등으로 속세로 돌아간 도반이 지금 청주교대 수학과 교수로 있다. 나머지 도반은 모두 선방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선객’2를 기대해도 되나.
춘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