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나는 1992년 맨 처음으로 한글과 친해졌다. 중학교 1, 2학년을 호주에서 보내며 기초 일본어를 배웠고 평소 로마자를 쓰지 않는 언어에도 관심이 있었다. 가족여행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한글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여행은 열흘에 불과했지만 국내 영자지에서 볼 수 있는 ‘오늘의 한국어’ 칼럼을 매일 열심히 읽었고 한글 간판도 신기하게 쳐다봤다.
나는 원래 언어를 좋아했고 언어 습득에 소질이 있어서 대학에서도 언어를 전공하려고 했다. 고교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이미 배울 만큼 배웠고 전공으로는 다른 언어를 지원하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 상담을 받았다. 여행 중 인상 깊었던 한국어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선생님은 콧방귀를 뀌시면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했다.
1년 후 내 돈으로 한국에 다시 와서 어느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했다. 10주 동안 열심히 배웠지만 귀국하려고 하니 담임선생님은 “의욕은 넘치는데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한국에서 근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국어 관련 정규 교육은 받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서 13년 이상 살게 되니 나도 모르게 한국어를 많이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배우다 보니 속어를 표준어로 착각하거나, 어떤 표현이 저속한지 모르고 잘못 배울 때도 많았다. 물론 나의 한국어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잘 모르는 문법도 꽤 많고 조사는 느낌으로 쓸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올여름 큰마음을 먹고 한국어능력시험에 처음 응시했다. 서울글로벌센터에 시험대비반이 있으나 모의고사를 한 번만 치르고 시험장에 초조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사실 한국인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한두 마디만 해도 과도하게 칭찬하는 편이라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한다는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들었다. 나는 최고 등급인 6급을 받아서 뻔뻔하게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대한 외국인’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한국 문화와 관련된 퀴즈 대결을 벌이는 형식이다. 여기에서 한국어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 한국어 능력은 조금 일차원적이라고 느꼈다. 속담을 거의 몰랐고 신조어도 어렵게 느껴졌다. 띄어쓰기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관련 퀴즈를 풀 때 매우 어려웠다. 방송에서 바보처럼 나올까 봐 매우 신경을 썼고 다시 한국어를 공부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고교 시절 내게 한국어가 쓸모없을 것이라고 했던 선생님이 내 인생을 본다면 매우 놀랄 것이다. 어쩌다가 한국말을 하며 먹고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종대왕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면 방송이 나갈 때 자막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자막이 없어도 내가 하는 한국어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면 만족할 것이다. 물론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계속 해야겠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