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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금수저’ 아직도…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 15곳 고용세습

입력 | 2018-10-10 03:00:00

일부 기업 단체협약 명시… 정부가 ‘노동계 적폐’ 사실상 방치




노조원 자녀에게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이른바 ‘고용 세습’ 조항을 노사 단체협약에 두고 있는 기업이 15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세습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정부는 ‘노사 자율’ 원칙을 고수하며 시정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노동계의 적폐와 불법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단체협약에 노조원 자녀 우선·특별 채용 조항을 둔 기업은 15곳으로 조사됐다. 유형별로는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 채용 11곳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3곳 △사망·질병·장해 자녀 또는 배우자 우선 채용 4곳 △신입사원 공채 시 자녀 우선 채용 1곳이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자동차는 네 가지 중 세 가지 유형의 고용 세습 조항을 두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신입사원 공채 시 동점자가 발생하면 노조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당한 노조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은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다.

15개 기업 가운데 두산모트롤 노조만 상급단체가 없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9곳,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5곳이다.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이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고용 세습을 주도하고 있는 사실이 이번 조사로 확인된 셈이다.

고용 세습은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은 근로자를 채용할 때 성별, 연령,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신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두 법을 어긴 단체협약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 김영주 전 고용부 장관도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를 단 하나라도 대물림하는 것은 사라져야 할 기득권이자 규제”라며 고용 세습이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없애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을 뿐 시정 명령, 수사 같은 적극적인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정부가 개입하면 노사자율 원칙을 훼손한다는 논리다. 특히 ‘노동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1년 넘게 가동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고용 세습을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

최근 사상 최악의 고용 참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용 세습을 지켜보는 청년들의 박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의원은 “고용 세습은 채용 비리와 동일한 범죄 행위이자 대표적인 노동 적폐”라며 “현 정부는 과거 정권의 채용 비리는 수사하면서 노조의 위법에는 눈을 감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고용 세습에 대한 형사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다. 고용부가 고용 세습 조항에 대해 시정 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노사 모두 기소돼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최대 500만 원의 벌금만 내면 고용 세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가 고용 세습에 적극 개입하고, 관련법을 손질해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노조의 고용 세습을 근절할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