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중년이 된 지 꽤 지난 시점에 있는 나로서는 당장 ‘10년 뒤에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미래는 항상 현재에 있다.” 이번 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시나리오 플래닝 교육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라파엘 라미레스 교수의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불확실성이 점차 높아지는 시대에 미래에 대해 한 가지 정확한 예측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미래에 대한 2∼4가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봐야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조직의 경영전략 수립을 위한 도구이지만 이 강의를 들으면서 직장인 개인의 삶에 의미하는 바도 생각하게 되었다.
10년 뒤 우리 사회는 정규직이 늘어날까 줄어들까? 내가 일하는 업계의 경기가 상승세일까 하향세일까? 내가 일하고 있을 직장은 잘나가고 있을까? 내가 일하는 분야는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기술의 발달과 함께 내 직업은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 10년 뒤 내가 현재 하는 일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만약 내가 아예 월급과 같은 정기적 수입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시나리오 플래닝에서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10년 뒤 현재의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 같은 분야의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 완전히 다른 분야의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 아예 직장을 떠나 독립한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에서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에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고려하여 현재에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지금 내가 일하는 직장에 계속 있다면, 혹은 중간에 다른 직장에 갔다가 돌아온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나는 어떤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야 하고, 어떤 전문성을 만들어가야 하며, 사내에서 어떤 평판을 만들어 가야 할까? 10년 뒤에 완전히 다른 업계로 직장을 옮긴다면,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떻게 협업해야 하고, 팀을 어떻게 더 잘 이끌어야 하는지,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달리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10년 뒤에 독립해야 한다면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는 무엇을 배워 나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실험도 해보자.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은 ‘사전부검’이라는 용어와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를 직장인에게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향후 5년 뒤 내가 이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직장에서 내가 실패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나는 어느 부분에서 잘못되어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 실패했을까?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현재의 내가 배우거나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삶은 계획대로 이루어질 때보다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노력보다 운이 더 많이 작용하여 좋은 일이 생길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2028년에 2018년을 돌아보면서, “10년이라도 젊었을 때 이렇게 할 것을…”이라고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10년 뒤 내게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서너 가지 생각해보고, 그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했을 때 내가 지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