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송유관공사 화재관리 ‘구멍’
9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스리랑카인 남성 A 씨(27)는 7일 오전 10시 32분경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강매터널 공사 현장에 떨어진 지름 40cm, 높이 60cm의 풍등을 발견하고 날려 보냈다. 이 풍등은 6일 오후 8시경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행사 중 날린 70여 개의 풍등 가운데 하나였다.
이 풍등은 바람을 타고 오전 10시 34분경 저유소 내 휘발유 저장탱크 근처 잔디밭에 떨어졌다. 이어 10시 36분경 잔디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유증환기구를 통해 불이 옮겨붙으면서 18분 뒤인 오전 10시 54분경 대형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A 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전국 저유소 8곳에 화재 감지 영상장비 없어
송유관공사 측은 “탱크 내부에 공간온도계가 설치돼 있어 화재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간온도계는 탱크 내부 온도가 80도를 넘으면 알람이 울리는 방식으로 화재 위험을 경고하는 장치다. 하지만 사고 당시 공간온도계는 화재를 감지하기 전 탱크 폭발로 파손돼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불꽃감지기나 열화상카메라같이 탱크 외부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감지할 영상장비가 있어야 탱크로 불이 옮겨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저유소에 설치된) 열이나 연기를 감지하는 장치는 불길이 일고 온도가 급작스럽게 올라가면 소용없다”면서 “화재 예방을 위해선 탱크 외부에 불꽃감지기나 열화상카메라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 취재 결과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고양저유소 외에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전국의 다른 대형 저유소 7곳에도 화재 감지 영상장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화재 감지를 위한 영상장비를 설치할 의무는 없는 실정이다.
○ “유증기 회수 장치 설치에 17억 원…효율 낮다”
외부에서 불꽃이나 연기를 감지하는 영상장비가 없으면 당직자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한다. 고양저유소에는 46대의 CCTV가 있다. 통제실은 2인 1조로 근무하는데 CCTV만 보는 인력은 없고, 화재 당일에는 통제실에 1명만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통제실 근무자가 상시적으로 CCTV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근무 중에 CCTV를 확인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별도의 당직자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장탱크 주변 바닥을 잔디 대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같은 불연성 물질로 깔았더라면 이번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송유관공사 측은 “다른 저유소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고 밝혔다.
○ 8년 동안 저유소 인근서 풍등 날렸지만…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6일 열린 1박 2일 캠프 참가자 150여 명은 풍등 70여 개를 날렸다. 이 행사는 2011년부터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8년째 열리고 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 / 고양=윤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