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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시간]〈28〉평생의 반려자

입력 | 2018-10-11 03:00:00


얀 반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며….” 요즘 결혼식에서 이런 진부한 주례사를 듣는 경우는 드물지만 ‘평생을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혼인서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580여 년 전 플랑드르의 화가 얀 반에이크가 그린 이 그림도 일종의 혼인서약서다.

반에이크는 지금의 벨기에에 속하는 플랑드르 화파의 창시자로 유화 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화가다. 이견이 있긴 하지만 이 그림은 이탈리아 루카 출신의 거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을 기념하는 초상으로 알려져 있다. 부부가 서있는 방 안은 황동 샹들리에, 고급 침대, 커다란 볼록거울, 귀한 수입 과일이었던 오렌지, 이국적인 최고급 양탄자 등 그들의 부를 상징하는 값비싼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압권은 부부가 입고 있는 옷이다. 초여름에 그려졌음에도 그들은 사치스럽고 값비싼 모피 옷을 걸치고 있다. 신랑은 신부 앞에서 신의의 맹세라도 한 건지 위로 든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잡은 신부의 오른손 위로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 이는 결혼을 통한 두 사람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 엄숙한 순간의 증인이자 기록자가 된 화가는 볼록거울 위 벽면에 ‘얀 반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 1434년’이라는 라틴어 서명을 멋지게 써 넣었다. 결혼의 증인은 화가만이 아니었다. 갈색 강아지 한 마리도 거기에 있었다. 브뤼셀그리폰이란 견종으로 벨기에가 원산지인 진짜 플랜더스 개다. 중세 벨기에 궁전에서 귀부인들의 총애를 받던 애견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강아지는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정절을 상징한다.

1872년 출간된 영국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여자 친구 부모와 이웃들의 외면으로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져 죽어갈 때, 끝까지 주인 곁을 지키며 운명을 함께한 것도 충견 파트라슈였다. 결혼도 선택이고 능력이 된 시대, 평생 아끼고 사랑할 대상으로 반려자 대신 반려동물을 택하는 ‘비혼자’들이 느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