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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아동-청소년 비만 환자 급증… 설탕세 도입 필요”

입력 | 2018-10-11 03:00:00

베리 팝킨 美대학 비만연구소장 ‘비만예방의 날’ 맞아 방한
비만은 개인의 문제 아닌 질병, 가공음식 먹기 쉬워진 환경이 문제
특히 아이들은 매체에 쉽게 영향… 패스트푸드 등 TV광고 규제해야




비만학 석학인 베리 팝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최근 국내 비만 관련 학술대회에 참석해 “정책을 통해 미리 건강한 식습관을 유도하는 비용이 고도비만 진료비 등에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보다 훨씬 적다”며 “설탕세 도입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누군가 뚱뚱하면 ‘자기관리에 실패했다’고 보는 경향이 짙다. 과연 비만은 순전히 개인의 문제인가?

최근 열린 대한비만학회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비만연구소장인 베리 팝킨 교수는 “비만은 질병”이라며 “개인이 아닌, 환경적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세계 의료계가 정한 ‘비만예방의 날(10월 11일)’을 맞아 그를 학술대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세미나실에서 만났다.

“원래 인간의 삶에 ‘비만’은 없었습니다. 문명이 싹트기 전에는…. 이제는 자동화로 신체활동량 자체가 떨어졌어요. 신선한 식재료를 파는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반면 편의점, 대형마트 진열대에는 지방, 정제 탄수화물 등이 가득한 가공음식이 쌓여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이 게으르고 식습관에 문제가 있어 뚱뚱해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팝킨 교수는 ‘만성질환이 식이습관에서 기인한다’는 ‘영양 전이 이론(Nutrition Transition Theory)’을 만든 비만학 분야의 석학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8개 국가의 비만예방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팝킨 교수는 “한국은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 급격히 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영양 전이 이론’이란 지역, 국가, 시기에 따라 음식문화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건강상태도 달라진다는 이론입니다. 코카콜라는 188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모든 지구촌에서 먹게 된 것은 2000년대예요. 한 식품의 전파 속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빨라졌습니다. 카페인 음료 ‘레드불’은 단 4년 만에 전 세계로 퍼졌어요. 영양가가 적고 열량이 높은 식품일수록 쉽게 확산되니 만성질환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한국은 2000년대 이전에 채소를 많이 먹고 지방을 적게 섭취하는 건강한 나라였죠. 전통 한과는 과자라도 덜 달았죠. 하지만 서구식 식단으로 바뀌면서 비만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비만으로 인한 한국의 사회적 부담은 2006년 4조8000억 원에서 2015년 9조2000억 원으로 9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고도비만 인구가 2030년에 전체 인구의 9.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동과 청소년 비만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0∼9세 아동의 비만 환자는 2008년 398명에서 지난해 784명으로, 10대 비만 환자는 같은 기간 1105명에서 1340명으로 증가했다. 국내 청소년의 가공식품을 통한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은 57.5g으로 세계보건기구 기준(50g)을 넘는다.

“TV만 켜면 패스트푸드 광고와 푸드쇼(먹방)가 나옵니다.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요. 칠레에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정크푸드 TV광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정크푸드 포장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쓰지 못하게 했어요. 포화지방산이나 당 등이 많은 고칼로리 식품에는 해당 물질이 ‘과하게 들어있다’는 마크를 붙여야 합니다. 담배처럼 경고 문구를 넣는 거죠. 그러자 칠레 전체 국민의 당 섭취량이 확 줄었어요.”

국내에서는 7월 정부가 폭식을 조장하는 먹방이나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자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미디어에 쉽게 영향을 받는 아동이나 청소년들을 위해 일정부분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팝킨 교수는 “영국과 프랑스 등 전 세계 38개국이 과당류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한다”며 “한국도 설탕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설탕세를 도입하면 콜라 등 가당음료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덜 사먹게 되고, 기업은 이 제품들의 당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설탕세의 선순환이다.

팝킨 교수는 “경제적 양극화가 향후 비만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만 해도 영양실조를 겪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비만이 늘면서 당뇨환자가 2억 명에 이릅니다. 중국의 경우 예전에는 뚱보가 부자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저소득층의 과체중 비율이 높습니다. 저소득층일수록 싼 정크푸드를 많이 먹어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만으로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지만 치료는 제대로 받지 못하죠. 가난의 대물림처럼 비만 역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만큼 긴 안목에서 대처해야 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