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무너진 후 ‘개혁’ 깃발 올린 보수, 시대흐름 보지 못한 채 제한적 혁신만 정치 실패 반성 없이 ‘반공’만 부르짖고 탈권위 시대에 권위 앞세운 보수만 주창 진정 보수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관성적인 ‘분열과 배제’ 정치인습 버리고 포용하고 관용하는 온정 보수로 거듭나야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금까지 보수야당의 개혁을 위해서는 이념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당의 단합과 보수세력 통합을 통해 정치 투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즉 보수진영을 재건해서 좌파 진영과의 정치 투쟁에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 성공국가를 건설한 산업화 세력의 공헌을 높이 받들고 좌파 세력의 준동에 철저하게 대처하는 반공 이념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야당은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 업적에만 천착해 있다. 과거에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관성에 빠져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 보수는 진화는커녕 더욱 배타적이고 경직돼 퇴화 또는 우경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수의 정통성과 적통성 회복을 통한 개혁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대 변화와 미래지향적 요소를 내포할 때에만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 관계가 한반도 평화시대를 구호로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적 반공주의만을 외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대북관계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지만 비판 역시도 신중하고 원칙에 입각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태도이다. 반공 일변도 입장은 전쟁과 평화의 선택에서 전쟁 프레임에 갇히게 마련이다. 보수도 평화를 사랑하고 공산주의와도 협상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융통성을 보여야만 시대정신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성장은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성장에서 분배의 균형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 대 99%의 뉴욕 시위에서 나타났듯이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었고 자본주의 4.0(인도적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갖추어 기득권층이 소외계층을 돌보는 온정적 보수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보수는 전통, 권위, 질서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만 이를 위해서 이러한 가치의 적용이 시대 변화에 따라 진화하지 않으면 그 이념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한국 보수가 결여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의 하나는 관용이다. 보수는 좌파처럼 이념에 충실하기보다는 실용주의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며 포용과 관용의 지혜를 견지하는 것이다. 보수가 분열과 배제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기본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제 한국 보수는 환골탈태로 거듭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온정적 보수주의, 건강한 보수주의가 재형성되어 정치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