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세계를 홀린 ‘정열의 탱고’
탱고를 추는 남녀 무용수. 핀란드에서 탱고는 사우나, 가라오케와 함께 긴 겨울을 보내는데 꼭 필요한 요소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알 파치노)가 여인과 탱고를 추는 장면은 애잔한 하이라이트다. 탱고는 1870년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항구의 뒷골목에서 탄생했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은 탱고를 추며 향수를 달랬다. 탱고가 태동하던 시기, 춤출 여성이 부족한 때는 남성끼리 부둥켜안고 거칠게 추었다. 가난한 이주자들이 모이던 카페와 식당이 밀집된 ‘보카’ 부둣가와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가 주거지구로 개발해 고향 시칠리아의 지명을 붙인 ‘팔레르모’를 중심으로 탱고 클럽이 발달했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역시 실험적 탱고 문화의 거점이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들여온 음악 ‘칸돔베’의 경쾌한 리듬과 쿠바 선원의 애환이 담긴 무곡 ‘하바네라’, 아르헨티나 가우초(목동)들이 부르던 노래와 함께 독일 이민자들이 가져온 악기 ‘반도네온’의 슬픈 선율이 탱고에 녹아들었다. 아르헨티나 하류층의 오락거리였던 탱고는 대서양을 건너며 콘티넨털 탱고로 변신해 20세기 초 파리 상류층을 매혹시켰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번진 탱고 열풍은 ‘남미의 파리’로 불리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역수출돼 탱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탱고의 인기는 빈, 뮌헨, 리스본 등 유럽과 뉴욕, 포틀랜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도쿄, 상하이, 방콕, 뉴델리 등으로 확산됐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