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역임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임 전 차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과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를 둘러싼 행정소송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소환은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에 부딪혀 난항을 겪던 검찰 수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내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임 전 차장을 조사한 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질 것이다. 행정처 문서를 작성한 전현직 법관 대부분은 검찰에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보고서를 썼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확보한 진술과 문건들로 미뤄볼 때 임 전 차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재판거래 의혹은 상고법원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수사 대상인 전현직 고위법관들은 검찰이 프레임을 짜놓고 수사한다며 내심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이 검찰 출두 때 말했듯이 사법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정권 때 상고법원 설치에 눈이 멀어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권력과 거리두기’에 실패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법원의 전 수뇌부는 이런 일탈에 대해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네 차례 기각했다. 법원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게 사려 깊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사법 불신’을 씻고 오히려 법원이 바로 서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