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검술 고수인 한 여인의 실력이다. 이 이야기는 안석경(安錫儆·1718∼1774)의 ‘삽교만록(霅橋漫錄)’에 제목 없이 수록돼 있는데, 연구자들이 내용에 근거해 편의상 ‘검녀’라는 제목을 붙였다. 검녀는 한 여인이 뛰어난 선비로 칭송받던 소응천(蘇凝天· 1704∼1760)을 찾아와 첩이 되겠다고 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응천은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끝내 그 여인을 받아들인다. 몇 년 동거를 하던 여인은 어느 달 밝은 밤, 독한 술과 좋은 안주를 차려 놓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 여인은 어느 양반집 아가씨의 몸종이었다. 아가씨가 9세 되는 해 양반집은 어떤 권세가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아가씨와 몸종은 복수하려고 남자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검객을 찾아 길을 나선다. 2년을 헤매다가 드디어 검객을 만나 검술을 전수받았고 꾸준한 연마 덕분에 5년이 지나자 하늘을 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여성이라서 집안을 이을 수 없었고 여성의 몸으로 세상을 떠돌아다닌 것 역시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검술 고수이면서도 당시 조선 사회의 보편적 인식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사대부가 여성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아가씨는 몸종에게 “너는 기이한 포부와 걸출한 기상을 가졌고, 처지도 나와 다르니 천하의 특별한 선비를 만나라”는 유언을 남긴다. 신분 차별적인 인식과 발언 같지만 사대부가 여성으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가씨가 정말 꿈꾼 삶은 아니었을까. 결국 몸종은 아가씨의 유언에 따라 소응천을 만나 살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는 ‘높은 도에는 이르지 못한 인물’이었다.
“전주와 같은 큰 도회지에 살면서 그저 적당하고 평범하게 아전들의 자제나 가르치며 의식의 충족이나 도모하고 달리 희망을 안 가지면 세상의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종이 소응천에게 한 충고다. 거짓 명성 속에 살면서 잘난 선비인 척하지 말고 능력에 맞게 속세에서 평범하게 살라는 말이다. 몸종의 입을 통해 사대부들에게 준엄한 자기반성을 요구한 것이다. 이 여성이 가진 뛰어난 검술도 흥미롭지만 자신이 모시던 아가씨와는 달리 미천한 신분임에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래서 ‘검녀’는 오늘날에도 신선하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