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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짝 이뤄 국정 좌우내각과 대통령 자문기구에도 교수가 차고 넘친다. 박상기(법무부 장관·연세대), 박능후(보건복지부 장관·경기대), 김광두(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서강대), 홍종학(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천대), 이효성(방송통신위원장·성균관대),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한성대), 윤석헌(금융감독원장·서울대) 교수는 가장 주목받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거시경제(장하성·홍장표·김광두), 사회·복지(김수현·박능후), 사정기관(조국·박상기), 방송·통신(이효성), 공정경제(김상조·홍종학·윤석헌) 전반을 교수들이 짝을 이뤄 밀고 끄는 모양새다.
박은정(국민권익위원장·서울대), 김판석(인사혁신처장·연세대), 김재현(산림청장·건국대), 강민아(감사원 감사위원·이화여대) 교수도 장·차관급 요직을 꿰찼다. 대통령직속 위원회에는 정해구(정책기획위원장·상지대), 송재호(국가균형발전위원장·제주대), 정순권(자치분권위원장·순천대), 강병구(재정개혁특별위원장·인하대) 교수 등이 활약하고 있다.
‘한국형 폴리페서’의 원조는 서강학파다. 서강학파는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전략을 주도한 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관료 그룹을 일컫는다. 재무장관, 경제부총리, 국무총리를 차례로 역임한 남덕우 교수를 필두로 김만제, 이승윤 전 부총리가 트로이카로 꼽힌다.
대선 때마다 캠퍼스는 백태 난무서강학파는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교수에서 장관으로 직행했다. 독재라서 가능했던 일. 남덕우 전 총리는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 방송으로 자신의 장관 발탁 소식을 들었다. 1970~80년대 한국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은 군과 대학이었다. 민간 전문가가 필요한 군부 기반의 집권자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셈. 이 모델은 민주화 이후에도 잔존했다.
서강학파와 다른 모델이 가시화한 시기는 1997년이다. 건국 후 처음으로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여·야 간 본격적인 경쟁 시대가 개막했다. 교수들이 정권 참여를 염두에 두고 택할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 3김정치가 마무리된 2002년 대선부터는 당내 경선의 중요성이 커졌다. 캠프도 우후죽순 늘었다. 캠프 참여 교수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는 1000명 넘는 교수가 몰렸다.
이러니 선거 때마다 캠퍼스엔 백태가 난무한다. 서울시내 사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Y교수는 “5년마다 큰 장이 한 번씩 돌아온다. 3개월 정도 바짝 활동하면 당선 후 공신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서 “한발 늦은 사람들 중 일부는 유력한 2위 캠프에 기웃거린다. 차기까지 염두에 두면 오히려 든든한 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교수가 캠프를 거쳐 장·차관에 직행하는 건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지타운대의 빅터 차도 실무진에 배치돼 국정에 참여했다. 닉슨 행정부에 발탁된 하버드대 헨지 키신저나 부시 대통령이 기용한 스탠퍼드대 콘돌리자 라이스도 마찬가지 경우”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윌밍턴)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정치를 최전선에서 연구·관찰해왔다. 서 교수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캠프에 참여한 교수들을 중용합니다. 하지만 그 영역이 외교·안보로 매우 한정돼 있어요. 그 외 분야 교수가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 걸쳐 대외정책을 수행하니 대선주자들이 유럽·아시아·중동 등 각 지역을 연구해온 교수들을 캠프에 영입합니다. 이들이 폴리페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당선 후에 이들은 주로 국장(director) 혹은 차관보(assistant secretary)로 기용됩니다. 이들의 역할도 어디까지나 조언자(advisor)로 한정돼요. 강의하고 연구하는 교수를 엄청난 인력과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행정부 수장으로 기용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그게 상식이에요.”
하지만 한국의 집권자는 각종 분야에서 전문성을 명분 삼아 교수들을 장·차관급에 기용한다. 교수는 “학문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라는 명분을 들이민다. 관료이자 학자였던 조선시대 사대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전례다.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는 걸 부러 강조하는 꼴. 때로는 “훈수보다 참여가 낫다”는 말로 스스로의 진정성을 내세운다.
‘박근혜의 브레인’에서 ‘문재인의 브레인’으로 변신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2017년 캠프 참여 당시 “욕먹는 길로 들어서는 것을 잘 알지만, 욕을 안 먹고 논평만 하는 것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2017년 3월 1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선거캠프에 합류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왼쪽부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진보 성향 공간·도시학자인 조 내정자는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는 정치경제학을 이론적 밑바탕 삼아 도시와 지역을 분석하는 연구자다. 자본주의 도시화의 폐해에 대한 비판으로 사상적 기반을 만들어온 셈. 이를 통해 개발, 시장 및 입지 분석 등이 주류인 도시학계에서 대안적 흐름을 주도해왔다.
조 내정자가 환경 현안에 접근하는 방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토건·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환경과 생태를 불러들인 식이다. 그의 책 제목대로라면 ‘개발정치와 녹색진보’의 구도다. 따라서 그의 연구 분야는 환경행정이나 정책이라기보다는 ‘도시 및 환경의 정치경제’에 가깝다. 문화재 전문가와 문화산업 전문가는 다르다. 문화산업 전문가를 문화재청장에 임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환경정치 연구자와 환경정책 전문가는 구별해야 한다.
청와대도 지적을 예단했던 모양. 김의겸 대변인은 조 내정자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장으로 근무하며 정책 전문성뿐 아니라 리더십과 조직 관리 능력이 검증된 인사”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조 내정자를 KEI 원장에 선임·임명한 날짜는 지난해 11월 10일이다. 청와대 말대로라면 평생을 강단과 시민사회에서 활동해온 학자가 11개월 만에 전문성·리더십·관리 능력을 두루 갖춘 장관 적임자로 변모한 셈.
도시이론을 전공하는 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조 교수는) 데이비드 하비처럼 공간 문제에 정치경제학을 적용한 학자다. 최근에는 생태도시나 균형발전 차원에서 환경과 부동산 문제에 접근해왔다. 하지만 환경정책 전문가라 평하는 건 다소 무리”라는 생각을 전했다.
비슷한 사례의 주인공이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다. 청와대는 지난해 6월 11일 고용부 장관으로 조 교수를 내정하면서 “노동문제 연구에 몸담아온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노동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높아 각종 현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교수의 전공은 정치사회학과 사회운동론이다. 노동 관련 현안에 적극 관여한 적도 없다. 사회운동론은 NGO·시민정치 연구에 가깝다. 그를 노동전문가로 탈바꿈시켜준 ‘마법의 명찰’은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다.
박근혜 정부 교육문화수석이던 김상률 당시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소수자 문학, 탈식민주의, 문화제국주의 등을 연구해온 학자다. 교육문화수석과의 연결고리가 헐겁다. 당시 청와대는 김 전 수석이 한국대학국제교류회장, 전국대학국제처장협의회장 등을 맡아온 사실을 알리며 “교육 현장에 대한 경험과 식견을 갖췄다”고 포장했다. 그래도 민망했는지 “업무에 대한 열의가 높고 철저해 발탁했다”고 덧붙였다. 결과는? 조카인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추천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훗날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정책 디테일 얘기할 사람 찾아야세 사람의 사례는 권력이 교수를 활용하는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평생을 공부해온 전공은 뒤로 밀린다. 대신 직책에 어울리는 전문성이 부여된다. 설사 전문성을 갖췄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책상물림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다.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는 “학술적 업적과 정책을 집행하는 전문성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공적 책임을 져본 적 없는 교수들이 고위직에 올라 유의미한 성과를 낸 적이 거의 없다”면서 “문 대통령이 관료사회 개혁 의지가 있다 보니 선택지가 정치인과 교수만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한 정당’도 정치·정책 공간에서 교수의 위상을 과하게 키운 요인이다. 당은 각종 선거를 통해 끊임없이 유권자에 대해 책임을 진다. 정작 당 정책위원회 인사가 주요 공직에 직행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러니 정당인들의 활동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이는 고스란히 ‘외부 전문가 수혈론’을 지탱해주는 근거로 작동한다. 이런 흐름을 더 자극하는 게 미디어다.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은 교수를 단골 패널로 활용한다. 교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전문가의 지위를 획득한다. 대선이 다가오면 인재 영입의 외피를 두르고 캠프로 직행한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조언이다.
“미국에서 15년간 석·박사·교수 하면서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교수를 부르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경제 문제 관련 폴 크루그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을 부르는 정도가 예외죠. 주로 의원이나 행정 관료, 언론인·정당인을 부르는데 이들은 정책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 철저히 숙제를 해서 나옵니다. 이 과정이 국민에게 전달돼 정책 신뢰도를 높이죠. 한국에서도 강의하고 논문 쓰는 일이 본업인 교수들을 토론 프로그램에 부르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정책의 디테일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야 해요.”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8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