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연금개혁중]<2>스웨덴-독일의 각박해진 노후
복지 선진국 유럽의 연금정책이 최근 적정보장에서 최소보장으로 바뀌면서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도 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 주변의 관광지를 한 노부부가 여행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이들 나라를 포함해 유럽 여러 국가의 연금 정책이 잇따라 ‘적정보장’에서 ‘최소보장’으로 바뀌고 있다. 고령화와 경기 침체, 출산율 저하 등의 위험 상황이 지속되면서 공적연금의 재정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개혁을 통해 연금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스웨덴은 유럽 국가로서는 가장 이른 편인 1998년에 적정보장에서 최소보장으로 전환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스웨덴 연금청 올레 세테그렌 연금분석팀장은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최소보장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등 공적연금의 혜택을 더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슈발트 부부는 지쳐 보였다. 3주 일정의 동유럽과 북유럽 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했다. 칠순의 노부부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행복했다”라며 웃었다. 슈발트 씨는 “부부가 모두 연금을 받기 때문에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도 여행을 못 다닐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부부 중 한 명만 연금을 받을 땐 독일도 살기가 쉽지 않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김옥희 씨(69)는 파독 간호사 출신. 38년간 근무한 덕택에 지금은 매달 1800유로(약 234만 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이 일찍부터 자영업을 하는 바람에 추가 소득이 그리 많지 않다. 김 씨는 “독일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면서 최근에는 생활고를 겪는 노인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사는 굿나르 그랑베리 씨(65)는 이달로 정년을 맞았다. 일을 더 할 것인지, 은퇴해 연금을 받을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스웨덴에는 65세 정년 이후로도 일을 더 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은퇴할 경우 봉사하는 삶을 살 작정이다. 수입은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소득비례연금(IP), 기업연금, 개인연금(PP)을 합쳐 종래 소득의 70∼80%가 연금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 엔지니어로 오래 근무한 덕택에 임금 수준이 높았고, 연금보험료를 많이 냈다. 그 덕에 받는 연금액도 많다.
다만 간호사인 아내가 걱정이다. 간호사는 임금 수준이 낮아 받게 될 연금액이 적다. 스웨덴에서는 남편이 사망해도 그 연금을 아내가 대신 받을 수 없다. 유족인 배우자가 65세 이하인 경우에 한해 1년 동안만 ‘전환연금’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원래 스웨덴에도 ‘과부연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세테그렌 팀장은 “연금 재정을 절약하고 독신자와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도를 폐지했다”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은퇴 후 받는 연금 액수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재정 상황에 따라 연금 액수가 줄어든다. 연금 재정의 안정성을 위해서다.
스웨덴 연금청은 매년 2월에 바로 전해의 자산(기금 총액)과 부채(지불한 연금액)를 종합 계산한다. 부채 대비 자산 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지면 연금 지급액을 줄이고, 이후 비율이 1 이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서서히 올린다. 쉽게 말해 재정이 악화하면 연금액을 줄이고 회복 수준을 봐 가면서 연금액을 다시 늘리는 방식이다.
2010년, 2011년, 2014년 3회에 걸쳐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연금 수령자들의 반발이 컸을 것 같지만 사실은 달랐다. 세테그렌 팀장은 “물론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제도를 충분히 설명했고, 연금액을 줄일 경우 여러 세금을 대신 인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급자들은 수긍했다”라고 설명했다.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면 특히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사실 저소득층은 평소에도 연금만으로 생활이 벅찰 때가 많다. 스웨덴에서는 이들을 위해 최저보증연금을 지급한다. 이 연금은 집, 자동차와 같은 자산은 제외하고 연금소득만을 조사해 최저생활 보장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주는 것이다. ‘최저보장’을 위한 안전판이라 할 수 있다.
○ 독일, 정부 책임 계속 줄여 나가
독일은 연금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00년대 이후 수시로 개혁한다. 당시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정부는 공적 연금을 축소하는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그 대신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리스터 연금’을 도입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05년 사민당은 총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줬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연금 개혁을 강행한 것이 국민이 등을 돌린 결정타가 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정치권을 떠난 후 자서전을 통해 “지도자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며 “선거에서는 졌지만 젊은이들과 미래를 위한 개혁을 단행했고, 그 결과 독일을 통일 이후 가장 좋은 경제 호황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요즘 독일은 어떨까. 보험료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대신 연금 수급액을 지속적으로 내리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2000년대 초반에 19%였던 보험료율은 2020년 20%, 2030년 22%로 인상될 예정이다. 반면 받는 연금액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2020년에 46%였던 소득대체율은 2030년에 43%까지 낮아진다. 65세로 돼 있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67세로 늦춰진다. 정부의 책임은 줄인 대신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기초보장제가 그것이다. 공적연금은 축소하면서도 최저보장 기능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스톡홀름=김상훈 corekim@donga.com / 프랑크푸르트=송진흡 기자
▼月 연금 205만원… 부부 생활비로 빠듯▼
23년 근무한 남편 연금으로 사는 파독 간호사 출신 장덕자씨
장덕자 씨(70·여)는 1970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 땅을 밟았다. 현재 장 씨의 주 수입원은 남편의 연금이다. 남편은 23년간 직장에 다니면서 연금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다. 그 결과 매달 1580유로(약 205만 원)를 연금으로 받는다. 추가 수입이 없지는 않다. 자녀 셋을 키운 공로를 인정받아 만 65세부터 매달 117유로(약 15만 원)를 받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한인 성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418유로(약 54만 원)를 받는다. 모두 합치면 한 달 수입은 2115유로(약 274만 원) 정도이다.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매달 주택 임대료와 관리비로 800유로(약 104만 원), 생활비로 500유로(약 65만 원) 등 고정 비용만 1300유로(약 169만 원)가 나간다. 교통비, 외식비까지 추가하면 지갑은 텅 빈다. 장 씨는 “남편이 외손녀들을 돌보려고 일시적으로 한국에 가 있어 생활비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다시 생활비가 늘어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좀 벅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연금을 더 받을 기회가 있었다. 장 씨는 1990년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20년간 간호사로 일하면서 연금보험료를 냈다. 하지만 딸 세 명의 교육을 위해 병원을 관두면서 연금을 일시불로 받았다. 정년까지 근무했다면 지금 장 씨는 매달 700∼800유로를 더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장 씨는 후회 없는 삶이라 했다. 장 씨는 “큰딸과 셋째 딸이 의사가 됐고 둘째 딸은 변호사가 됐다. 자식들이 훌륭하게 컸으니 위안이 된다”라고 말했다. 큰딸은 독일과 한국 모두에서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