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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카레이서’도 못 피해간… 고속도로 과속의 비극

입력 | 2018-10-22 03:00:00

[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16>순간의 실수, 15년째 고통의 늪




유정석 씨(왼쪽)의 아버지 유성복 씨가 1일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정석 씨가 카레이싱 선수로 활약했던 때의 모습을 보여주며 소개하고 있다. 정석 씨가 2003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성복 씨는 줄곧 아들의 거동을 돕고 있다. 용인=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만난 유정석 씨(43)의 말 중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유성복 씨(72)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말을 잠시 멈추면 정석 씨는 “미안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정석 씨는 1급 뇌병변 장애인이다. 아버지는 “속 썩이지 않고 성실하게 커준 아들에게 평생 ‘미안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 ‘1등 카레이서’였던 아들

사고가 난 건 2003년 9월 20일 오전 3시 30분 경기 용인시 경부고속도로 신갈 분기점 부근이었다. 정석 씨가 오르막에서 평탄한 도로로 진입하는 순간 앞에 가던 5t 화물차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핸들을 틀었지만 왼쪽 차로에 차량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시 화물차 쪽으로 핸들을 틀어 그대로 화물차 왼쪽 바퀴 아래 깔렸다. 일본, 영국 등에서 쓰는 ‘오른쪽 운전석’ 차량이라 정석 씨가 받은 충돌 충격은 더 컸다.

사고 전 정석 씨는 촉망받는 카레이서이자 솜씨 좋은 정비사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 차량 소리만 듣고도 어떤 부품이 고장 났는지 알아냈다. 수리가 까다로운 외제차 차주들이 전국 각지에서 정석 씨를 찾아왔다. 레이싱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국내외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했다.

그런 정석 씨가 자신의 몸과도 같은 차를 타던 중에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속도는 시속 140km. 2003년 경부고속도로의 제한최고속도는 시속 100km였다. 설상가상으로 늘 뒷좌석에 싣고 다니던 카레이싱용 안전모(헬멧)가 뒤에서 날아와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 193cm 장정 아들 업고 전국 병원 돌아

아버지는 아들과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15년 전 그 밤을 잊지 못한다.

“경찰이 아들 다 죽게 생겼으니 빨리 오라고…. 제가 살려만 달라고, 어떻게든 고쳐보자고 매달렸어요.”

뇌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은 정석 씨는 3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됐고, 뇌병변 때문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렵다.

아버지는 정석 씨를 돌봐줄 요양원을 찾아봤지만 키 193cm 몸무게 100kg의 큰 체격인 정석 씨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거구여서 돌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역할을 맡게 됐다.

아버지는 정석 씨를 치료해 보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아버지는 “마비 환자를 잘 치료한다”는 말을 들으면 강원 춘천부터 전남 해남까지 어디든 정석 씨를 데려갔다.

“어떤 한의원은 3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용하다고 해서 매주 아들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땀범벅이 돼서 아들을 차에 태워놓고 나면 어찌나 마음이 무너지던지….”

생활고 때문에 간병에만 계속 매달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몸이 불편한 정석 씨를 차에 태우고 일을 하러 다녔다. 아버지는 전자오르간, 기타 등을 연주하는 행사 연주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정석 씨는 2006년 9월부터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으로 매달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받고 있다.

○ 한 줄기 빛 아내와 아들

정석 씨의 삶에 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 것은 ‘천사’ 아내다. 그녀는 정석 씨의 상황을 모두 알고서도 2010년 그와 결혼했다.

아내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남편을 매일 목욕시키고, 욕창이 생길까 봐 밤에도 1시간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 준다. 요양보호사와 활동보조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정석 씨 관절이 굳지 않게 운동 치료도 직접 한다. 아들도 생겼다. 아내는 잡지 속 정석 씨의 사진을 가리키며 “남편이에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받았던 트로피를 자랑했다. 아버지 성복 씨는 그런 며느리와 손자가 안쓰럽다.

가족들은 토요일마다 벼룩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국수 한 끼를 먹고 돌아오는 소소한 외출도 시작했다. 하지만 휠체어 위에서 떠먹여 주는 밥을 먹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가슴이 무겁다. “사고가 난 지 15년 됐지만 아직도 아들을 보면 속상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단 한 번의 사고가 가져온 일입니다. 우리 가족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해요.”

용인=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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