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대적 요구” 아닌 세계와 거꾸로… 노동권력 요구에 정의가 뒤집힐 판 촛불시위 주도한 민노총에 잡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혼자 안전문을 점검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 살 김모 군. 박원순 시장의 페이스북 글대로 우리는 용역업체 직원 김 군의 뜯지 못한 컵라면에 가슴 아파했고 ‘위험의 외주화’를 반성했다. 그래서 사고 대책으로 나온 안전업무 직영화 방침에 진심으로 박수쳤다.
박 시장은 ‘이번에 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분들도 다 김 군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안전업무뿐 아니라 식당과 목욕탕 직원, 청소노동자까지 자회사의 무기계약직(고용 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정규직으로 분류된다)도 아닌, 선망의 직장 공기업의 일반 정규직이 됐다.
취업준비생은 물론 아직도 관존민비(官尊民卑) 시대에 사는 일반인이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공공기관 채용에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당선 직후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민노총을 믿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공기업에 들어가 있을지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6월까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었던 진성준은 정규직화가 시대적 요구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비정규직 감축이 대선 공약인 건 맞지만 세계적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공공부문…조사’도 독일에서 1990년대 신공공관리 이후 재정 절감과 경쟁시스템 도입으로 시간제와 기간제 등 비정규 고용이 확산됐다고 소개했다. 2015년 6월 현재 공공부문 전체 580만 명 중 400만 명이 기간제를 포함한 전일제 고용이고, 나머지 180만 명이 시간제 고용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하는 이 나라도 최소한 32%가 우리 식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독일에선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과 처우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부문 산별직무급에 따라 1∼15등급으로 정해진 임금표가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보고서는 “독일 사례처럼 고용형태상의 차이와 무관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차별 해소가 우리나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기본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정규직화부터 강행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7년 2월 18일, 시위를 사실상 주도해온 민노총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마련한 사회연대노동포럼 결의대회에서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철폐 등이 담긴 그들의 정책제안서를 받았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참가한 이 자리에서 지금 주중대사인 노영민 전 의원은 “이번에는 정권을 같이 만들어서 정권교체 이후에도 참여해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덕담이라고 하기엔 무시무시한 발언도 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대기업 정규직 등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를 거느린 이익집단이 이들 노동권력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한민국을 공중 납치하지 않고서야 정부가 국민에게 이럴 순 없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