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혁 경제부 기자
지난해 말 쏟아진 국내 증권사들의 주가 전망 보고서는 장밋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국 씨티그룹, 일본 노무라증권 등 대다수 외국계 금융사도 3,000을 내다봤다. 실제로 코스피는 지난해 말 2,500을 넘나든 데 이어 올 2월 장중 2,600을 돌파하며 머지않아 ‘3,000 시대’를 여는 듯했다.
투자자들은 이런 장밋빛 분석과 더불어 한국 경제의 성장세를 믿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상반기(1∼6월) 내내 올해 3% 성장이 확실하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민간 경제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의 초입 단계”라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성급한 판단이라고 치부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 연속 ‘경기 회복세’ 판단을 유지하다가 이달 발표한 경제동향(그린북)에서야 회복세 표현을 삭제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요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은 5개월째 월 500억 달러를 넘는 등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반도체 쏠림’ 현상은 더 심해져 수출 기업들의 주가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꼽히던 경직된 남북 관계도 최근 해빙기를 맞았지만 주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증시 하락세를 이끄는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예상됐던 악재다. 국내 증시는 외부 충격에 약한 한국 경제의 체질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다른 나라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증시는 실물경제의 거울이라는 말을 두고 맞다, 틀리다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외풍에는 취약하고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같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있는 남북관계 호재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한국 경제의 현주소이며 이게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코스피의 추락은 반도체에 의존한 한국 수출의 구조적 문제,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기업·소비심리, 효과가 미비한 정부 경제정책 등이 맞물린 결과인 셈이다. 코스피 하락을 단순히 금융시장의 문제로 국한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 주가에 투영된 한국 경제의 위기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