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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TNT 타임]‘핫식스’ 이정은 LPGA투어 도전이 주목받는 이유

입력 | 2018-10-22 08:26:00

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 출전
국내 투어 상금, 평균타수 1위 경쟁 잠시 뒤로
박인비 “큰 무대 성공 가능성은 충분.”
어릴 때부터 역경 극복. 러프가 꽃길로




‘핫식스’ 이정은(22)은 22일 미국으로 떠났다. 2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파인허스트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 시리즈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눈앞으로 다가온 LPGA투어 진출

108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45위 안에 들면 2018년 LPGA투어에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정은은 지난달 자신의 세계 랭킹(현재 19위)으로 퀄리파잉 시리즈 파이널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는 “미국 진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너뛰기엔 아까운 기회라고 여겼다. 퀄리파잉 시리즈 결과가 나오면 그때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종 성적표가 나오지 않은 만큼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이정은이 합격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8 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 디너 파티에 참석한 이정은.

올해 이정은은 LPGA투어 6개 대회에 출전해 톱10 1회를 포함해 5차례나 20위 이내에 진입했다. 컷 탈락은 한번 뿐이었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과시했다. LPGA투어에서 받은 상금 합계만 해도 약 28만 달러.

지난해 KLPGA투어에서 대상, 상금, 평균타수 등 전관왕에 올랐던 이정은은 올 상반기 KLPGA투어에서 무관에 그치며 슬럼프가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일각에서는 LPGA투어 대회에 오가느라 체력이 떨어지고 스윙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미국 보다는 가까운 일본 투어를 노리는게 현실적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정은이 21일 K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박준석 작가 제공

하지만 이정은은 9월 한화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뒤 21일 끝난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두 번째 트로피를 차지했다. 시즌 2승을 모두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하며 어느덧 상금 1위(9억5305만 원)에 나섰고 평균 타수 선두 자리도 굳게 지키게 됐다.

이정은은 “올해 미국 대회 출전을 병행한 것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미국 대회장에서 쇼트게임 연습을 많이 한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체력적으로 어렵고 언어도 안 통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는 경험과 대회장에 워낙 연습시설이 잘 돼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정은이 퀄리파잉 시리즈를 통과할 경우 내년 시즌 활동 무대를 LPGA투어로 옮길 가능성은 높다. 평소 동경하던 LPGA투어에 직행할 수 있는 길을 자신의 실력으로 연 만큼 새로운 필드 인생을 연 것이라는 게 주위의 관측이다.

이정은 측근에 따르면 지난 연말 메인스폰서인 대방건설과 3년 계약을 하면서 해외 진출 제약 등의 조건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현실 안주 여자골프에 신선한 바람

미국 일본 여자프로골프투어 한국인 선수 비교

이정은의 LPGA투어 도전 결정에는 찬사가 따르고 있다. 최근 KLPGA투어가 활성화로 상금, 대회수가 늘어나면서 한국 여자 선수들의 LPGA투어 진출 시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22일 현재 시즌 상금 7억원을 넘긴 선수만도 5명에 이른다. 반면 상금 선두 박상현(7억900만원)을 제외하면 상금 5억원이 넘는 선수가 한 명도 없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는 벌써 몇 년째 선수들이 앞 다투어 해외로 나가는 실정이다.

국내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이 후원하는 LPGA 2부 시메트라투어는 상금 랭킹 상위 10명에게 다음해 LPGA 투어 카드를 부여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경로로 LPGA투어에 진입한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문경안 볼빅 회장은 “국내 대회가 별로 없을 때는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를 많이 두드렸다. 이젠 KLPGA투어가 커지니까 국내에 머물려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문 회장은 또 “향후 LPGA투어는 한국 보다 태국, 중국 선수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한국은 주니어 골프 선수들까지 줄어들면서 국제경쟁력 약화가 이미 시작됐다. 아시아경기 금메달도 따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주요 한국 선수 LPGA투어 진출 경로

‘골프 여제’ 박인비는 “이정은 선수는 워낙 단단한 실력을 갖고 있어 눈 여겨 봤다”며 “이미 여러 번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LPGA투어에서도 아주 잘 할 것 같다. 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17년 KLPGA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동반 플레이를 하고 있는 이정은(왼쪽)과 박인비.

박인비 역시 후배들의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KLPGA투어가 많이 발전하다보니까 분명 리스크가 있는 LPGA투어를 무작정 노크하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더 많은 후배들이 LPGA투어에 자꾸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도전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실패를 해도 돌아올 시간이 있다. LPGA투어에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통하는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너무 많다. 한국 선수 중에서 세계 1위가 나오고, 국제대회에 많은 우승을 해야 KLPGA투어도 성장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정은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재열 해설위원은 “이정은 프로가 (퀄리파잉 시리즈) 통과만 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다. 체력, 정신력, 경험 등을 다 가지고 있는 선수다. 이 프로는 이미 다른 선수들과 다른 준비가 돼 있다”고 분석했다.

2018시즌 이정은 LPGA투어 성적

이신 해설위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정은 프로가 예쁜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큰 무대에 대한 꿈이 있어서다. 다들 망설이고 갈까 말까 하는 데 도전에 나섰다.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가시밭길을 꽃길로 바꾼 불굴의 의지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이정은.

이정은은 어려서부터 역경을 극복해 왔다.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 씨(54)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는 사실은 이젠 널리 알려졌다. 이정은이 네 살 때 일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이정은은 부모님의 헌신으로 골프 스타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관뒀던 그는 중3 때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레슨 프로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다시 시작한 골프였다. 이정은의 아버지는 딸이 고교 시절 대표팀에 발탁돼 훈련 경비를 지원받기 전까지는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아가며 뒷바라지했다. 불편한 몸에도 딸의 대회 출전을 위해 손으로만 조작이 가능한 장애인 전용 승합차 운전대를 잡은 것도 아버지였다.

2016년 KLPGA투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아버지, 어머니와 카메라 앞에선 이정은. 김종석 기자

이정은이 프로 골퍼로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아버지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탁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휠체어에 의지한 채 탁구채를 휘두르는 모습에 이정은의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정은은 “골프 하기 힘들고 쉬고 싶을 때 아빠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이정은의 발걸음은 아주 예전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