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예천에는 올해 9월 22일 ‘미조’ 등 독자적 세계관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남기웅 감독의 전시회 ‘얼굴전’을 보러 갔다. 감독의 고향인 예천에서 전시한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우선 놀라웠던 것은 전시장이다. 원래 정미소였던 곳을 고쳐 ‘대심情미소’라고 이름 붙인 곳이다. 아담한 목조건물 내부는 원래 골조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정미용으로 사용했던 기계들도 그대로 놓여 있었는데, 마치 현대풍의 오브제처럼 보였다.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도 예천의 상징이랄 수 있는 커다란 나비와 무당벌레 같은 곤충들이 컬러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인 10월 7일, 태풍 콩레이가 지나간 다음 날 부산 자성대공원의 조선통신사역사관을 찾아갔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영상과 전시물로 조선통신사의 역사와 당시 모습이 알기 쉽게 전시돼 있었다. 관람객도 생각보다 많았고, 가족 관람객이 전시를 열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층에서 바깥으로 나가자 2003년에 이전돼 복원된 영가대가 있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양에서 왕에게 국서를 받아 출발하고, 이어 전국 각지에서 부산에 모인 통신사 일행이 영가대에서 모두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낸 뒤 일본을 향해 출발했다고 한다. 이곳에 와 보고서야 왜 조선통신사에 있어 부산이 중요한 곳인지 납득이 됐다.
전시장은 영가대를 지나 자성대공원으로 이어진다. 자성대는 멀리서 보면 나지막한 언덕 숲처럼 보이지만 실은 ‘왜성’이라고 불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지은 성이다. 천천히 올라가자 당시 만들어진 성벽이 여기저기 남아있고, 전날 태풍에 부러진 나뭇가지와 솔방울이 길바닥에 흩어져 있어 생각이 복잡해졌다.
지금까지 내게 부산의 이미지는 이국적인 항구도시였다. 하지만 부산은 임진왜란, 근대화 과정의 국제시장 등 긴 역사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거센 파도를 넘어 모순을 허물고 앞으로 나아간 곳이었다. 명실상부 국제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일관계엔 아직껏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록을 주도했듯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큰 공통점을 찾아내고 사소한 다른 점은 접어두자는 의미)’의 속 깊은 용기가 있는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률 감독의 ‘군산-거위를 노래하다’가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 상영됐다. 전작 ‘경주’에 이어 한국 지방도시의 독특한 지역적 공간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주인공 박해일의 “(감독님은)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배우들과 작업을 할 것 같다”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장 감독의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작품처럼 흔히 말하는 대중영화는 아니지만 독보적이다. 그의 작품은 한중일을 아우르는 독특한 세계관이 있고, 세상에 살고 있는 소수자들의 모순된 삶과 속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방의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지방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보는 건 어떨까.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