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 농단 의혹 수사가 시작된 이후 핵심 피의자에 대한 첫 구속 수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3일 임 전 차장에 대해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인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6개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의혹 외 추가 범죄사실 또한 영장에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임 전 차장 영장 범죄사실에는 양 전 대법원장 및 고영한·차한성·박병대 등 전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이 공범으로 적시됐다.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 요직인 기획조정실장과 차장 등을 지내며 각종 사법 농단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법관 동향 파악 및 재판 거래,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중간 책임자’로서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임 전 차장은 다수 의혹의 지시자이자 주체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 및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행정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소송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형사재판 등 재판에도 개입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임 전 차장은 아울러 헌법재판소 내부 동향 파악, 부산 법조 비리 사건 은폐 등과 관련해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혹도 있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기밀 유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비난 기사 대필 등 의혹에도 관여한 정황이 포착된 상태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임 전 차장의 서초동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물적 증거를 확보한 바 있다.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 첫 압수수색 대상으로, 당시 검찰은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 보관하고 있던 임 전 차장의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확인하는 등 핵심 증거를 입수했다.
검찰은 또 지난 9월에는 임 전 차장이 사무실 직원 지인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 사용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이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지만, 검찰은 소지자인 해당 직원으로부터 임의제출받아 임 전 차장의 ‘차명폰’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민걸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전·현직 법관 수십명을 조사한 뒤 지난 15일 임 전 차장을 첫 소환 조사했다.
임 전 차장은 4차례에 걸친 소환 조사 과정에서 사실상 혐의를 전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은 특정 사안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죄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앞서 검찰은 재판 기록 문건 등 자료를 무단으로 빼내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유해용(52·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지난 9월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 결정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이례적으로 A4 용지 2장 분량의 장문의 사유를 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기각을 위한 기각 사유에 불과하다”며 어떻게든 구속 사유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유를 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임 전 차장은 유 전 연구관 이후 이뤄지는 두 번째 핵심 피의자 구속수사 시도다. 조만간 열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임 전 차장 양측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