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 범행” 사우디 주장 반박
“조사 계속 진행… 터키 법정 세워야”, 왕세자 연관-시신 행방은 언급 안해
카슈끄지 닮은 인물 일부러 노출… 영사관 밖으로 나간 것처럼 연기
터키 경찰, 버려진 영사관車 조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이 23일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틀 전 “우발적 몸싸움으로 인한 사망이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검찰의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카슈끄지 암살팀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터키 정부의 조사 결과를 상세하게 공개했다. 다만 언론에 보도됐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연루설이나 고문 녹음 파일 존재설 등 사우디 왕실이 민감해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우디 암살팀이 카슈끄지 행방을 찾을 터키 경찰 조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여러 작업을 한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2일 CNN은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내 사우디 영사관 안으로 들어간 지 몇 시간 후 영사관 뒷문으로 카슈끄지와 비슷하게 분장한 한 남성이 걸어 나오는 화면을 보도했다. 영사관 주변 폐쇄회로(CC)TV에 찍힌 이 남성은 얼핏 보면 카슈끄지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겉모습이 비슷하다. 카슈끄지 옷을 입었고, 안경과 시계도 착용했다. 흰색 수염까지 가짜로 붙였다.
그러나 이 남성은 암살팀 15명 중 한 명인 무스타파 알 마다니였다. 카슈끄지가 제 발로 영사관을 걸어 나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체격이 비슷한 대역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이 남성은 택시를 타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터키 사원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방문했다.
터키 언론 등에 따르면 카슈끄지가 살해된 다음 날인 3일 영사관 마당에서 의문의 남성 3명이 드럼통에 무언가를 태우는 장면도 공개됐다. 또 이스탄불의 한 공영 주차장에 설치된 또 다른 CCTV에 한 남성이 영사관 소유 차량을 버리고 가는 장면과 또 다른 차량으로 실어온 의문의 초록색 봉지를 이 차량으로 옮긴 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장면 등이 포착됐다. 터키 경찰은 23일 이 지하 주차장에서 사우디 영사관 소유의 버려진 차량을 발견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암살팀 15명이 누구의 명령으로 이스탄불에 왔는지, 왜 영사관은 살해 뒤 곧바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건에 연루된 용의자 모두가 터키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우디는 23일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행사를 예정대로 개최했다. 사막의 다보스로 불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정부 및 기업, 경제계 유력 인사들에게 사우디의 각종 경제 및 산업 개발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자리다. 그러나 카슈끄지 사건으로 유력 인사들이 대거 불참해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 전채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