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사회부 차장
石女溪邊亦作舞(석녀계변역작무·돌 여자가 시냇가에서 또한 춤을 춘다)
대검찰청 8층 문무일 검찰총장의 집무실 책상 옆 벽에 걸려 있는 족자의 글귀다. 지난해 7월 초 부산고검장이었던 문 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부산을 떠나게 됐다. 당시 관내 고찰(古刹) 범어사의 주지 경선 스님이 문 총장에게 축하 인사와 함께 이 족자를 건넸다.
이 글귀는 불교계에서 회자된다. 선승(禪僧)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향곡 스님(1912∼1979)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임종게(臨終偈·죽음의 시)이기 때문이다. 한때 범어사에 머물렀던 향곡 스님은 “모든 것을 수용하라”는 의미로 임종게를 썼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7월 25일 취임한 문 총장의 재임 15개월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취임 전부터 녹록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와 정치권, 법원, 경찰, 여론이 검찰에 비우호적이어서 ‘검찰이 오면초가(五面楚歌)에 놓였다’는 얘기가 있었다. 검찰 개혁 입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취임 뒤 문 총장은 검찰 안팎의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안으로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단이 문 총장의 부당한 수사 지휘 의혹을 제기하며 항명했고, 검찰총장의 제1참모부서인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압수수색했다. 밖으로는 전직 대통령 2명과 5명의 전직 국가정보원장 등 과거 정권의 최고위층을 상대로 적폐청산 수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현직 검사가 투신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그 위기들을 다 돌파했지만 문 총장은 여전히 위기다. 그는 최근 지인들에게 “검사들이 밤잠을 못 자고 수사하는데, 너무 힘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것이다. 몇몇 판사가 아니라 사법부를 상대로 한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는 문 총장도 상상을 못 했던 일이다.
그는 요즘 매주 주례 회동 때 사법부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사법부를 상대로 절제된 수사를 하라”고 지시한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더 충실하게 수사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영장 기각 등 외부 탓을 하기보다는 의혹을 낱낱이 밝히라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 묵묵히 수사하면 된다. 그리고 죄가 된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기소하는 게 ‘문무일 검찰’이 다시 한번 위기를 돌파하는 길이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